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열을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들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은
예수님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면서
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해지면서
누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누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이 서로 갈라집니다.
이러한 분열을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서로 각자의 모습이 다르다고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은 옳고 반대편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툼이 생기고
그 분열의 골은 더 깊어집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 옳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종종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이 되고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택한 사람이 적을 때
그것을 선택한 이들은 잘못 선택한 사람이 되며
더 나아가 예수님의 가르침도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택한 사람이
더 많은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숫자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힘의 논리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여기에서는 좋지 않습니다.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들의 주장을 굳히기 위한 것인데
그 방법이 아니라
증언을 선택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증언의 힘은 약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택했다는 것은
진리를 선택했다는 것이기에
그 진리의 말씀은
그 자체로 증명됩니다.
즉 내가 머리를 써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아무리 그것이 진리이고 사실일지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하느님의 방식은
힘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눌려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 머물러 있을 때
끝까지 하느님을 선택하고
진리를 고수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우리에게 참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