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고 싶었지만
찾아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와
별이 나타난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는
좀 더 자세히 찾아보려는 노력보다는
그 시간과 장소와 관련된 모든 아기들을
죽이게 됩니다.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나머지
한 아기만 죽이면 되는 것을
수 많은 아기의 피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살아있지는 않겠지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께서 이집트에 머물러 계셨기에
헤로데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결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자신이 한 결정에 만족하며 살았을까요?
순간 순간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오히려 더 신경이 날카롭게 섰을 것입니다.
'정말 죽었을까?'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지?'
수 많은 고민이 꼬리를 물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힘의 논리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겉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안만
더 크게 만들 뿐
그 불안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 상황에서 헤로데가
수 많은 희생자를 만드는 것처럼
실수만 키워가고
문제만 더 크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하느님께서는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힘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드러내면서
그 약함을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통해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