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는 혼밥, 혼술의 혼족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저도 아니 혼족이 무슨 뜻인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혼자 사는 족속 또는 혼자 사는 가족이라는 뜻이지요.
제가 한심해하는 것은 신생아 수가 줄어든다고,
이러다가는 인구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 걱정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나 혼자 산다.’와 같은 프로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세태이니 아무 가정이라도 많아지면 좋겠다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성가정 운운하는 것이, 과연 통하는 얘기일지
의문이 들면서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패배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는 성가정의 의미를 제대로 또 적극적으로 살아,
다시 말해 우리 가정을 먼저 복음화하여 온 가정을 복음화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가정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널리 풍기는 것이지요.
가능하다면 성가정 TV도 만들고 그럴 수 없다면
‘나 혼자 산다’는 프로에 대항하는 프로그램을 기존 평화방송에 마련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금을 모으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받아 훌륭한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고 홍보도 하는 사업도 벌이는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많은 신자 가정이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고,
그런 성가정을 모범 사례와 희망 공동체로 매체를 통해 퍼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모범이 될 성가정입니까?
그것은 삼위일체 공동체와 요셉, 마리아, 예수의 성가정이고,
그래서 하느님과 성령의 사랑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 가정입니다.
방금 저는 성령의 사랑을 언급했는데
성령의 사랑을 좀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성령의 사랑은 다양한 가운데서 일치입니다.
달리 말하면 다르지만 하나를 이루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일치가 조화를 이루고,
한마디로 사랑과 자유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유는 최고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인데
그러나 우리는 조화를 이루는 데 보통 실패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보통은 자유를 선택하고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데 혼족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하면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서 자유롭고 자유롭게 사랑하려면 자유롭기를 자기가 바라는 만큼
상대에게도 자유를 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바라는 사랑을 하기에 실패합니다.
나는 자유롭기를 바라면서 너는 내가 바라는 너이길 바라는 겁니다.
꼭 대가를 바라지 않더라도 내가 사랑하면 너도 나를 사랑하기를,
내가 이만큼 사랑했으면 너도 그만큼은 사랑하기를,
내가 이런 사랑을 했으면 너도 그런 사랑을 하기를,
내 사랑을 받은 만큼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어떤 때는 그 이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더 고약한 바람도 있습니다.
나만 사랑하기를,
내 곁에만 있기를 바라며 사랑의 구속을 하고 자유를 박탈합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주고,
내가 힘들 때는 힘이 되어주고,
만사 귀찮을 때는 적당히 거리를 떨어져 있어 주고,
내가 말할 때는 언제나 맞장구쳐 주고 수시로 사랑을 표현해주기를 바랍니다.
상대방도 슬프고 힘들 때가 있는데도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라는 것이 모두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 맘에 들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없는 성령의 사랑을
가족 서로 실천하는 성가정이 많아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