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저의 동기 수사님 삼우 미사를 가족과 함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제가 마침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고
올해 2024년을 맞이해야 할 날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연말연시에 우리는 버리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가야 할 것은 챙겨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였고,
마찬가지로 수사님에 관련해서도 안 좋은 기억이나 감정은 버리고,
좋은 기억과 감정과 유산은 간직해야 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에게만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올해 나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선 작년의 무엇을 내가 가지고 살아야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예 새롭게 시작하고 살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는 새롭게!
새 술은 새 부대에!
작년에 아무리 잘 살았어도 작년이 올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올해는 새해니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런데 새로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 나이 먹도록 이것저것 살아봤는데 안 살아본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 말고 우리가 살아야 할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 말고 살아야 할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코헬렛서가 얘기하듯 태양 아래 새로울 것이 없고 다 있던 것입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 아닌 다른 것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새롭게 사는 것인데,
새로운 영혼으로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오스딩 성인이 고백록에서 얘기한 바로 그 ‘오랜 새로움’입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영원까지 살아야 할 사랑,
그 하느님의 오랜 사랑이고 그것을 매일 그리고 매해 새롭게 사는 것인데
오늘 축일로 지내는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잉태하면 됩니다.
새로운 영혼, 새로워진 영혼은 성령의 영혼입니다.
성령으로 매일 천주를 잉태하면 새로운 영혼이고 새로워진 영혼이 됩니다.
그럼으로써 진주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듯
성령의 영혼은 사랑을 잉태하여 하느님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든 조개가 진주를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몸 안에 들어온 모래와 같은 이물질을 진주 핵으로 품고,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거친 다음 생성되는 것만 진주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몇십 년의 고통을 사랑으로 살아온 결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고통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그러나 차츰 성령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통을 진주로 못 만들어내는 삶은 고통스럽기만 하고 슬픕니다.
고통이 진주가 되게 올해도 살아가야 하고
고통을 하느님 사랑으로 만드는 과정을 올해도 살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올해 살아가시라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올 한해 고통이 없게 해달라고 여러분을 축복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무슨 축복이냐고 서운하단 소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러는 중에도 올해 평화 주시기를 모세처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