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제 새해맞이 공동 휴식을 한 뒤 형제들과 긴 대화를 나누다가
죄에 관한 얘기까지 대화가 풍성해졌습니다.
이때 저는 우리 교회가 너무 죄 얘기를 많이 한다고,
이 죄 저 죄, 죄가 너무 많다고 다소 비판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무 많은 율법 조항으로 죄가 많게 만든 유대교를 비판하시고,
계명을 사랑의 계명으로 단순하셨고 오늘 세례자 요한이 증언하듯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신데 우리 교회는 다시 죄를 많이 만들고는,
주님을 그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요 자비하신 분으로 만들었다고,
어떻게 보면 자비하신 하느님으로 만들려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일부 신학자들은 교회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였지요.
사실 죄가 너무 많습니다.
사는 것이 죄다 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분이시고,
사랑하지 않는 것만이 죄라며 죄를 단순화하시고,
그럼으로써 죄를 적게 만드셨습니다.
요한의 서간도 같은 맥락으로 얘기합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최초에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이것이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한 것이 1차적인 죄이었다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숨은 두 번째 죄가 더 큰 죄였습니다.
명을 한 번 어긴 것보다 관계가 끊긴 것이 더 큰 죄이지요.
아무리 엄한 명령일지라도 그 명령을 한 번 어긴 것보다
그로 인해 부모와 단절한 것이 더 큰 죄인 것과 같습니다.
한번 상상해봅니다.
죄를 짓고도 하느님을 피해 숨지 않았다면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피해 그늘로 숨은 것 자체가 어둠이고 지옥이며
하느님께서 추방하신 것이 아니라 셀프 낙원 추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주님께서 제일 중요한 계명이 사랑이라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으니 제일 큰 죄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것,
하느님 안에 머물지 않는 것,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것 등
그것을 뭐라고 표현하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이고,
하느님 사랑의 은총 안에 있지 않고 자기 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계속 우리 죄를 없애주시는데
우리는 자꾸 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지 않고
자꾸 자기 죄 안에 머무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내가 자주 하고 자꾸 하는 짓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