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오늘 요한의 서간은 속지 말라고 합니다.
속는다고 함은 무엇이 사실이 아닌데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는다는 것이 실은 믿는 것입니다.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는 것이고 믿기 때문에 속는 것이고,
그렇기에 속는다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거나 나쁜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습니다.
속지 말자는 것은 탁 느끼기에도 수세적이고 부정적이지요.
아무에게도 속지 않기 위해서 모두를 의심하게 되겠지요.
좋은 것인데도 나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도 되고요.
그래서 좀처럼 그리고 점차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요.
의심이 심해져 불신까지 하게 되면 문제는
의처증이 중증이 되듯이 더 중증이 되고요.
그러므로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음이 좋겠습니다.
그것은 속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제대로 믿는 것?
첫째는 믿을 분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속지 말라는 것은, 아무나 믿지 말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불신을 조장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제 말은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 말라는 것이요,
사람은 아무도 하느님처럼 믿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만 믿어야 합니다.
그 정도의 사람을 그 이상의 사람으로 믿었다가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을 믿기에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도 않고 속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또 하느님을 믿더라도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언젠가 웃기는 얘기할 때 많이 하던 얘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먼저 탕 안으로 들어가 ‘아, 시원하다.’했고,
그래서 아들이 들어갔다가 너무 뜨겁자 ‘믿을 놈 하나도 없네’라고 했다지요.
주님께서 고생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당신에게 오라고,
당신에게 오면 안식을 주겠다고 또 짐을 가볍게 해주겠다고 하신 말씀을
짐을 안 지게 해주시고 고생이 없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믿었다가는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한 자식처럼 주님도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속이는 사람들 때문에 넌덜머리가 나 주님께 왔는데 주님께도 속았다 할 것입니다.
사실 많은 신자가 하느님을 믿으면 고통을 없애주실 거라고 믿음 때문에
믿기 시작하는데 주님은 고통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지요.
주님은 짐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고,
주님의 길은 꽃길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짐을 지지 않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짐을 잘 지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꽃길 걷게 해주겠다고 귀를 간질이는 인간에게는 속지 말고,
반대로 자기 십자가를 매고 당신을 따라가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오히려 믿고 따라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