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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공현의 신비는 관계의 상호성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선입니다.

 

인간은 나약함에도 완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만심을 부추겨 자신이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고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을 이용 대상으로 보려 합니다. 존중심도 없고, 마음의 문을 열지도 못하고, 관계의 문을 여는 손잡이도 없고, 주고받음도 없으며 영적인 심한 굶주림도 없기에 결국 관계의 파국을 초래하고 맙니다. 인간은 본래 사회성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랑은 관계를 떠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을 떠나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은 길 떠나는 영혼에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적 여정의 출발선에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며, 더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로부터 얻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통제의 칼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하느님의 가난하심과 겸손을 배우는 현장에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있으며 나약함으로 나약함을 구원하시는 육화의 신비가 있습니다. 인간과 동등해지기 위하여 하느님의 동등성을 포기하신 예수님의 육화는 사랑의 신비이며, 사랑은 동등할 때 사랑하기 쉽고, 더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길 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서 성모님의 젖을 먹고 요셉의 보호로 시작된 예수께서 마구간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과 신체적 그리고 영적인 감수성을 다 갖고 사셨습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통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가를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받아들이기 위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삶과 행동으로 관계 안에서 복음을 발생시키셨습니다.

 

회개는 관계의 신비를 받아들이고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단순한 교리나 도덕률이 아닌 사랑의 행위로 존재의 친밀함과 상호 교환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개를 금욕으로 가르치거나 인식하는 이들에 의해 매우 실천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신심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근본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지금도 확산하고 있음을 봅니다.

 

복음은 기쁨을 발생하는 관계 안에 있고 관계는 신적 관계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행복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참여하는 이 신비는 관계 안에서 선이 흐르게 하여 행동하는 자비로 표현되고 행동하는 자비는 하느님의 손에 들려있는 나의 자유를 도구 삼아 반사된 선으로 참여하는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 세계 안에 살아 있는 생명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관계의 사슬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 창조의 세계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지금 여기서 누리는 행복을 깨닫게 하는 신비입니다.

 

 

바치는 데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사랑받음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육화된 말씀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선에서 나온 이 신비는 인간관계의 모델로써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내어주시는 친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시작됩니다.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의 주고받음에서 성령의 활동을 깨닫게 되며,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자연 세계의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에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 채워진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을 넘어 관계의 상호성 안에서 하느님의 선이 태어납니다. 나약한 인간의 몸에 잉태된 하느님의 말씀은 관계의 땅에서 태어난 선이며 선의 흐름이 있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힘은 사랑의 전능이지 지배하는 전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계의 상호성 안에서 인간은 완전한 몸으로 태어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고 서로의 필요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은 이러한 상호성 안에서 부드럽고 따듯한 품으로 받아들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쁨으로 완성됩니다. 말씀의 육화와 공현의 신비는 이렇게 관계의 상호성 안에서 모두 안에 나타난 사랑의 신비로 경험됩니다.

 

2024, 1, 4. 주님 공현 축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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