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모세5경을 대표하고
예언자들은 예언서를 기록한 이들이라고 볼 때
이 말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이야기하는 분
곧 우리가 기다려온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나타나엘은 그 말에 흥미로워하지만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기에
조금은 실망합니다.
성경에서 메시아는
다윗 고을인 유다에서 탄생할 것인데
필립보가 말한 메시아는
나자렛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직접 만나볼 것을 제안합니다.
이에 나타나엘은 필립보를 따라갑니다.
나타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다고 표현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즉 그는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찾았던 메시아를
이제 그는 직접 눈으로 보게 됩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그도 알아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꿈 이야기를 하시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야곱의 꿈에서 천사들은 하늘을 향해 오르내립니다.
즉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천사들은 사람의 아들을 향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즉 하느님이심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잘 알기 어렵고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처럼 볼 수도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의 감각이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지켜 보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가 당신께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욱이 나타나엘이 생각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기에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필립보를 통해 나타나엘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 삶에서 초대의 손길을 보내 주십니다.
필립보의 '와서 보시오'라는 초대의 말을
우리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의심이 들지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시도가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의
거기에 덧붙인 초대의 응답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구유에 누워계신
지극히 약한 아기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