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1월 6일 토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 1,10)
온유한 해방
왜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셨을까요? 비둘기는 온유하고 순수한 동물입니다. 성령께서도 온유하시므로(갈라 5,22 참조)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한편, 비둘기는 노아의 옛 사건을 떠올려 줍니다. 재앙이 온 세상을 덮쳐 인류가 멸망할 위험에 빠져 있을 때, 폭풍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표징으로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나타나서는 온 세상이 평화로워졌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창세 8,11 참조). 이 모든 것은 미래 일들의 예형이었습니다. … 이번에도 비둘기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오지 않고, 온갖 악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분, 은총 가득한 희망을 가져오시는 분을 알리러 왔습니다. 이 비둘기는 나타나 한 가족만 방주에서 데려 나오지 않고 온 세상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었으며, 올리브 나무에서 평화의 가지만 물어 오는 대신, 온 세상 모든 사람이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1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신학은 모두 성서의 개념인 ‘다바르’ 내지 말씀을 해석하거나 발전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창세기의 서두를 여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이다. 그것은 일단 발설되기만 하면 창조하고야 마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말이다.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일이 이루어지게 한다. 엑카르트가 “아버지 내지 창조주는 말하는 행위”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진리나 창조를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 내는 행위다. 하느님, 곧 창조적인 말씀은 신비와 능력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네 인간이 창조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거나 말을 잃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창조는 우리에게 대단히 거룩하고, 인간의 언어보다 거룩하다. “창조된 모든 질서는 신성하다”라고 엑카르트는 말한다. 신적인 말을 하는 것에 가까운 유일한 말씀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는 하느님의 “활동 중인 말”이다. 모든 진실하고 참된 말이 그렇듯이, 하느님의 말씀도 하느님으로 남아 있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출구는 그분께로 들어가는 입구다’라고 엑카르트는 말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에게 이름을 지어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성모독에 맞서 싸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이름이나 본성보다 뛰어난 하느님에게 이름을 지어 붙일 수 없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이름을 지어 붙일 경우, 그것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 하느님은 하느님을 넘어서는 하느님이다.(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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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제5주간 영적 성찰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성찰 주간> 생태 실천 성찰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맘의 평화를 간직합니까?
성냄은 평화의 적이다. 성냄은 탐욕을 일으키는 동인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화를 내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 성의 욕구, 인정받고 소속되고 싶은 욕구, 권력에의 욕구, 자유에의 욕구, 자아초월에의 욕구, 이러한 종류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방해받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내게 된다. 그러므로 화가 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주 성을 내고 오랫동안 그 화를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갖고 온다.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본성적인 욕구를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 본성의 욕구를 승화시킬 수 있을까? 먼저 온 마음과 온 정성과 뜻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 자유이신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 하느님께로 들어가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내 자신으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각해서 온 우주를 품어 안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에게 화가 일어났다면 시원한 물을 하잔 먹는 것이 좋다. 찬물은 화로 인해 뜨거워진 사람의 뇌를 시원하게 해주고 흥분한 신경계를 고요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만일 여러분의 화가 너무 강해 돌출하려 한다면 크고 깊은 호흡을 3번이상 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30분정도 혼자 걷는 것이 좋다. 그리고 조용한 곳을 찾아가 하느님께 기도하고 명상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명상은 성냄과 모든 장애를 즉시 파괴하는 힘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