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최소한의 법에 안주하지 말라.>
고백성사를 주다보면 참으로 민망하고 답답할 때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성사를 보러 들어와서는 지은 죄가 없다고 딱 잡아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 하러 여기 들어왔냐고 하면 봐야 한다니까 들어왔다는 겁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지만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래도 잘 생각해봐라,
죄를 안 짓는 인간이 어디 있냐?’고 하면 여전히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는 죄 없는 사람을 굳이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는 죄가 없는데도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죄 있음에도 없다고 그가 딱 잡아떼는 것입니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분은 정말 자기가 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기를 왜 죄 있다고 하는지 그는 영문을 모릅니다.
왜냐면 그의 죄는 몇 가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죄.
간음죄.
사기죄 등 대체로 큼지막한 죄만 죄입니다.
그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자기는 죄를 짓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살인죄를 짓지 않았지만 미움의 죄는 부지기수지요.
간음죄는 짓지 않았지만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 더 큰 죄를 짓고 있지요.
이것도 제 생각이고 지나친 논리인지도 모르지만
부인을 사랑하지만 간음죄를 지은 것보다
간음죄를 지었지만 부인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간음죄를 짓고 고백성사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제가 꼭 묻는 것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답을 하면 정말로 사랑하느냐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그가 대답을 하면
그 사랑의 약함을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시는 간음죄를 짓지 말라고 그에게 맞는 훈계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최소한의 법에 머물지 말라고 하시며
간음죄와 관련해서는 실제로 짓지 않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음욕조차 품지 말라고 하시며 마음의 정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정결이란 다른 사람에게 음욕조차 품지 않는 것이지만
그 속뜻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으로 오롯하고 만족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도 어려운 것이기에 율법은 최소한으로
간음은 하지 말라고 한 것인데,
주님께서는 최소한에 머물지 말고 최대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자극을 받고 격려를 받아
최소한의 법에 안주하지 않고 최대한의 사랑을 하기로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