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인도로 박사들은
동방에서 그 먼 길을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별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그 별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별을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범상치 않은 별을 보면서
위대한 존재가 태어났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존재는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서로 궁금해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 길을 왔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시기에
그들은 우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임금은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기에
왕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맞지 않았습니다.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시기에
왕궁이 있는 유다 지역은 맞지만
큰 도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 베들레헴이었습니다.
하필 그 작은 도시일까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는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그곳에서 태어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성경을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왕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도 하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마태오복음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있었습니다.
임금으로 태어난 위대한 존재가
구유에 누워 있다니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찾던 그 아기가 맞는지
의심도 들었을 것입니다.
도시는 왕의 도시가 아닐지라도
아기가 있는 곳은
집이 아닌 마굿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의심을 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
곧바로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이
별이 멈춘 곳에서 발견된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별이 그들을
위대한 존재에게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에
멈춘 곳에서 발견한 아기가
비록 왕의 도시도 아니고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
그 아기가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려는 아기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별을 보내주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은 여러 계기를 통해서 바뀌기도 합니다.
좀 더 정확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어느 모습이 더 정확한지
우리 스스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는 별을 보내주십니다.
좀 더 확실한 모습을 찾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시는 별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찾아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