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 수요일-2012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일상, 아니 일생에 대한 요약입니다.
공생활 이후 예수님은 매일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이렇게 사셨습니다.
탁 드는 느낌은 불꽃 같은 삶이셨습니다.
그다음 드는 느낌은 “나는?”입니다.
“나는 이중 무엇을 얼마만큼 잘 따르고 있나?”입니다.
주님은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어제 봤듯이 예수님은 책상받이가 아니십니다.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십니다.
대부분 시간을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 가운데서 보내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제는 식사를 하며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얼마나 힘들지 형제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노상 아픈 사람들과 상대를 하니 말입니다.
사람은 아픈 사람을 대하면 아픔이 전이되고
우울한 사람과 만나면 우울함이 전이되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살려면 그리고 그 일을 계속하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전이돼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이 충만하던지
전이 되는 것을 아예 잘 차단하던지.
많은 사람은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 없기에
전이 되는 것을 차단하는 쪽으로 선택을 합니다.
저도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고통을 많이 겪는 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찾아가지 않아도 찾아오는 분들로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찾아가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감당하기가 더 힘들어진 겁니다.
역시 찾아가야 합니다.
태도의 문제인데 더 능동적이기 위해서입니다.
찾아 떠나지 않고 찾아오는 분들을 맞이하는 것은
안주하고 수동적이지 않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오늘 주님은 붙잡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른 곳으로 떠나십니다.
그러므로 저도 그랬어야 했고, 지금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분들을 제가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 고통이 전이되는 걸 차단하게 된 더 큰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 부족이었습니다.
기도가 부족했다고 제가 말할 때 그것은
기도 시간이 짧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쩌면 기도 시간은 짧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기도 시간은 충분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의 기도에 있어서 부족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저의 사랑이 부족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하느님 사랑에 제가 풍덩 잠기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잠기는 겁니다.
하느님 사랑의 샘에서 물을 깃는 겁니다.
주님은 그 바쁜 중에도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그랬어야 했고, 지금도 그러해야 합니다.
기도하러 가서
무엇을 하지 말고,
생각을 하지 말고,
계획을 하지 말고,
자책을 하지 말고,
명상이나 심지어 묵상도 말고
오직 사랑에 잠겨 있다가 나와야 할 겁니다.
지난 주일부터 이번 봄 학기 강의 준비하러 왔습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 있어서 강론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강의에 집중하느라 새로운 강론을 쓸 수 없어
전에 올렸던 강론을 다시 올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강론 꼬박꼬박 올리겠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잠겨 있다가 나오시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