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 금요일-2022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중풍 병자가 죄를 용서받고
치유까지 받는 얘기인데 우리는 여기서 왜 병을 치유하면서
주님께서는 죄가 용서받았다고 하시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 의문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기보다 용서와 치유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자문하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냐 하면 어제 여기 밥상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제가 오늘처럼 선택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는데
사랑의 하느님과 능력의 하느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하느님을 선택해야 할지 같이 얘기 나눈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자 능력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 한분을 선택하면 두 하느님을 다 선택하는 것이 되지만
그래도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의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왜냐면 사랑없이 능력만 있는 것을 선택한다면
악령을 선택하는 것과 진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권고 5번에서 얘기하듯 악령도 능력으로 치면 대단하기에
우리의 병을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악령의 하수인이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죄의 용서와 치유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이에 눈치 빠른 분들은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답하실 테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겠지요.
마찬가지로 용서가 아니라 치유만을 원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악령이나 의사에게 가면 됩니다.
그리고 치유만 받고 그 관계는 끝나거나 끝내도 됩니다.
우리는 병원에 가서 돈 주고 치유받고는 그것으로 끝나지요.
의사와 우리의 관계는 돈을 주고받는 관계지 사랑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려는 주님께
베드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자 주님께서 그러면
너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게 된다고 하신 바가 있지요.
기실 우리의 모든 죄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죄이고,
그래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는 것,
다시 말해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 말고도 죄의 용서를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곧 건강을 위해서도 죄의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전에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지만
건강에는 육신의 건강,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 영혼의 건강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육신이 건강하지 않을 때는 건강을 회복하려고 하고,
그래서 병을 인정하고 나으려고 하고 어떤 치유든 받아들입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처럼 심리적인 병도 인정하고 나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에 병이 있다거나 영혼에 병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러기에 고치려고 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육신의 병 때문에 자살하거나 남을 죽이지는 않지만
심리적, 정신적, 영적인 병은 자살하기도 하고 남을 죽이기도 하잖습니까?
사실 많은 병은 서로 유기적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고,
뒤집으면 건강한 정신과 영혼에 건강한 육체와 마음이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관계의 회복일 뿐 아니라 영적인 병의 치유이고,
그래서 주님께 죄를 용서받을 때 우리는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뿐 아니라 영적인 건강을 되찾고 다른 건강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근원 치유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치유부터 해야 하고,
영혼의 치유인 죄의 용서부터 우리는 받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