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저에게 이 말씀은 이렇게 들립니다.
복음으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즉시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 기쁜 소식이 아닌 사람도 즉시 회개하라!
사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행복하지 않은데도 그 생활을 그대로 하는 것은 자기에게 죄입니다.
행복하지 않은데도 어떻게 그 생활을 하는 겁니까? 자기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사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하는 행복 정도를 삽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행복을 사는 이유가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정말 불행하기에 불행하지 않다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행복이란 만족 상태이기에 행복하지 않지만,
불행하지 않다고 만족하는 것도 궁색하지만 행복의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지 않은 것이 행복입니까?
이 정도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은 현명이지만
불행하지 않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고
그래서 현명하고 자기 인생에 책임감이 큰 사람은 즉시 ‘행복 회개’
다시 말해서 불행한 삶을 회개하고 행복을 위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일반 사람도 이러해야 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더 그래야 합니다.
일반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 것이면서 주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일반 사람처럼 살았을 땐 행복하지 않았고,
그래서 행복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믿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태중 교우였지만 한동안 다른 철학과 다른 종교를 기웃거린 사람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왜 굳이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방황하고 편력을 한 십 년 하다가 그리스도에게서 답을 찾았고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저의 인생철학은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가 아닙니까?
왜 행복하지 못하고 왜 행복에 조건이 있습니까?
무조건 행복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만 내게 있다면.
하느님 나라가 없는 것이 불행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하느님 나라가 자기에게 아무리 가까이 왔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시 얘기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닌 사람,
그래서 복음으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주님께서 부르셔도 즉시 따라나서지 않는 사람은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의 니네베 사람들은 즉시 회개한 사람들이고,
복음의 첫 제자들도 주님의 초대에 즉시 응답하여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미뤄서는 안 되고 즉시 뭔가 해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때가 찼습니까?
나의 행복의 때는 아직 덜 찼습니까?
행복을 미루겠습니까? 즉시 행복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오늘 우리입니다.
네 저는 즉시 행복하겠습니다. 조건 없이 무조건 행복합니다.
갈쳐 주셔서 감사합니다.신부님~
신부님도 늘~ 그러므로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