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이 은사는 오늘날 교회에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러한 표징과 능력들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것들에 관하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는 그 당시 사도들을 통하여 육적으로 행하였던 바를 지금도 날마다 영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구마 은총으로 신자들에게 안수하고 악령이 신자들의 정신 안에 살지 못하게 할 때, 그것이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어떤 신자든지 속된 옛 삶을 버리고 거룩한 신비를 말하며 온 힘을 다하여 창조주의 권능을 거듭 찬미할 때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선한 권고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을 제거하는 사람은 ‘뱀을 집어 드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표징들은 영적이기에, 곧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고양시키는 수단이기에 더 위대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원하기만 하면 이러한 표징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2
창조 – 밖으로 흐르되 안에 머물기
말씀을 선포하시오(2티모 4,2).
“만물을 이용하라”는 말의 셋째 의미는, 만물 속에서 하느님을 한결같이 사랑하라, 즉 가난할 때도 부유할 때도 하느님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그분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유혹의 손길이 미치든 미치지 않든 간에, 고통을 겪든 겪지 않든 간에 그분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고통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두 개의 물통을 들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가 더 무거울수록, 다른 하나는 더 가벼워질 것입니다. 포기하면 할수록, 그만큼 포기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달걀을 버리듯이 온 땅을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주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고통을 견디는 것도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108)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8-10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애매한 본당 신부의 태도
10월 13일의 저 대이변 이후에도 그의 친구들이 겨우 설득시켜 고바 다 이리아로 데려갈 지경이었으니 그의 심중은 어떻든 간에 적어도 공중 앞에서 아직도 의혹의 껍절을 벗어 버리지는 못했다. 틀림 없이 이 신부는 리스본 대주교가 “파티마에 관한 어떠한 종교 운동에도 관여치 말라”고 교구 성직자들에게 발포(發布)한 명령을 너무 옹색하게 지킨 것이다.
그런데 직책의식이 강한 신부는 마지막 발현 이틀 후에 직책상 사건의 경위를 대주교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서한에는 퍽 객관적인 태도가 나타나 있음을 엿볼수 있다.
불행하게도 그 당시 메데스 빼로 추기경은 관헌의 박해로 그 교구에서 추방되었다. 로마 성청에서는 교구이사로 쟌 들 리마 위달 주교를 임명하였다. 새 이사는 다음날 11월 3일부 서면으로 회답하고 이 충실한 본당 신부께 발현과 기적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해서 하나도 빼놓지 말고 보고하도록 부탁했다.
본당 신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주된 목격자를 불러 진술하는 것을 기록하여 만 1년 6개월에 걸쳐 아주 신중하고 엄밀한 조사서를 작성하여 1919년 4월 28얼에 그 보고를 마쳤다.
그동안 레이리아 교구는 교회법에 준한 복구가 있었으나(1918.1.17) 1920년까지 주교 임명은 없었다.
따라서 파티마 문제는 쓸데없이 시간만 흐르게 하고 공연히 민심을 초조하게 했을 뿐이었으니, 교회 당국의 결정이 늦어지자 페레이라 신부도 오랫동안 괴로움과 불안 속에 버려져 있었고 따라서 세 아이들에게도 속히 위로를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