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하는 짓들
예전에 제가 본당에 잠깐 있을 때 옆 교회 전도사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분이었는데 기도할 때마다 그 여자분 생각이 나서 너무 괴로웠고,
그래서 일생 독신으로 사는 신부에게 무슨 비법이 있나 배우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온 김에 하나는 따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왜 천주교 신부는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느냐?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제가 성경에 하느님께서 흥겨운 술을 주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수님도 먹보요 술꾼으로 비난받으실 정도로 드시지 않았느냐?
이렇게 반박했지요.
둘 다 아전인수인 셈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무엇입니까?
저기 논에 물 대는 것이 아닙니까?
물을 끌어다 자기 논에 대듯이
우리 인간은 권위 있는 말을 서로 끌어다
자기주장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는 데 쓰지요.
술을 왜 안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안 먹어야 하는 거지요.
술을 왜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먹어야 하는 거지요.
며칠 전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저녁 식당에 오셨습니다.
지금 저희 <여기 밥상> 식당이 공유식당을 시작하였습니다.
점심은 삼천 원짜리 식당을 그대로 하고 저녁은 이주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이주민 자매가 제값을 받는 장사를 하고 그래서 술도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시끄럽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막 늘어놓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대 한국 사람들이
술을 먹고 많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아예 술을 못 먹게 하였는데
그것이 한국 개신교의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손을 씻는 정결례도 이스라엘의 전통일 뿐입니다.
요즘 청결을 강조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흙 가지고 놀지도 못하게 하고 돌아오면 꼭 손을 씻게 하는데
적당히 균들과 함께 살아야 싸워 면역력이 생길 텐데
너무 지나쳐 오히려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 영성적 의미도 있지요.
씻어야 할 더러운 손은 먼지가 묻은 손이 아니라
뇌물을 받아먹은 손이요 피를 묻힌 손이지요.
사랑에 어긋나는 더러운 손은 놔두고,
제 건강을 챙기기 위해 손을 씻는 정결례는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남을 해치는 뒷담화나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할 짓입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위로와 격려와 힘을 주는 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짓은 어떤 짓들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