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순 제2주일의 두 독서는 두 아버지의 아들 봉헌을 얘기합니다.
두 아버지가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봉헌하였다고 얘기합니다.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제1독서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봉헌한 얘기이고,
제2독서 로마서는 성부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봉헌하셨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순 제2주일은 당신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하느님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치라는 것이 진정 사순 제2주일의 주제일까요?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복음의 다음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분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언제 흔들입니까?
박해나 극심한 시련의 때가 아닙니까?
믿음이 언제 필요합니까?
박해나 극심한 시련의 때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시련의 때에 믿음이 제일 많이 흔들리고 크게 흔들리지만
이때가 믿음이 더 필요한 때라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이 평안할 땐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은 믿음도 굳이 필요치 않습니다.
씨뿌리는 이의 비유에서도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돌밭에 뿌려진 씨에 비유하시며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게 될지도 모를 때,
제자들처럼 믿고 의지하던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를 때,
그리고 그때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없을 때.
그때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지금 비록 시련 당하지만, 이때 믿음이 더 필요하고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단련되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하십니다.
수난 예고 때는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며 수난과 죽음은 빼놓고 듣고,
막상 수난이 닥치고 주님께서 확 돌아가시고 나면 절망감 때문에
부활에 관한 말씀은 빼놓고 들을 수 있는데
바로 그 절망의 때에 부활의 말씀을 상기하고 영광을 내다보라는 거지요.
오늘 본기도는 그래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느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따르라고 명하셨으니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고 영혼의 눈을 맑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여기서 중요한 말이 ‘영혼의 눈을 맑게 하시어’입니다.
육신의 눈은 지금 죽음을 목도하지만
영혼의 눈은 불신과 의심과 절망으로 흐려지지 않고,
맑은 눈으로 부활을 내다보며 ‘부활 관상’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진정 믿음의 눈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맑은 눈으로 부활 관상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