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그 잎이 푸르고 줄곧 열매를 맺는다.”
오늘 예레미야서를 바탕으로 의지와 신뢰의 차이를 묵상해봅니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과 누구를 신뢰하는 것의 차이 말입니다.
의지의 문제점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대어 서기에 스스로 지탱하거나 설 수 없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하면 지팡이 없이는 서 있거나 걸을 수 없습니다.
술에 의지하면 술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술 중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지하는 그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서지 못합니다.
의지하는 그 사람이 다행히 좋은 사람이면 다행이지만
좋은 사람인 줄 안 그가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겠지요.
그에 의한 행복이 그에 의한 불행으로 바뀔 것이고,
나의 인생과 나의 행불행이 그에 의해 좌우되고 그에게 매입니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를 믿고 자기 힘에 의지하는 사람 말입니다.
자기 인생과 자기 행복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훌륭하고,
불교의 경우 이런 면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종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오늘 예레미야서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라고 얘기하듯
자기를 과신하거나 아무도 믿지 않는 곧 과신과 불신의 자기 믿음이라면
다른 얘기일 것이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보다 더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과신이 타인 불신으로 이어지고
타인 불신이 단절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과신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이고
하느님과도 단절하게 하기에 더 큰 문제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물가의 나무처럼 싱싱하고 열매를 많이 맺지만
자기를 과신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단절되어
생명의 물과 단절된 사막의 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믿으면 엽니다.
사람을 믿으면 사람에게 열고,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께 엽니다.
그러니 믿는 것은 과신이나 불신보다 낫고
앞서 봤듯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라자로 얘기를 볼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과 비교할 때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라자로가 가난해서 천국에 갔다고 하는데
실은 돈만 없어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의지할 돈도 의지할 사람도 없어서 천국에 간 것입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하느님께만 믿음을 둔 것이고
하느님밖에 믿을 곳이 없어서 하느님이 계신 천국에 간 것입니다.
반면 부자는 라자로와 정반대 지점에 있고 그곳이 실은 지옥입니다.
지옥이란 돈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하느님이 없는 곳이 지옥이고
불타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영원히 단절된 곳이 지옥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부자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까?
의지하는 사람입니까? 신뢰하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