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서로 다른 두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같은 곳에 있었기에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있었고
이어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옆으로 굴리고는
그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천사를 보았다는 것에서 놀랐지만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에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것을 본 한 사람들인 여자들은
그것을 주님 부활로 알아보고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달려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인 경비병들도
그 소식을 전하러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그들의 말을 거짓으로 바꿉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계획은 성공했습니다.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 제자들의 도둑질로
소문을 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경비병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바꾸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천사들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고
전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그 강한 체험은
잊어버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부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일을 소홀히 하여
밤중에 잠이 들어
시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책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욕심은
경비병들의 마음까지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그들도 앞서 이야기한 여자들처럼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설득하는 말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에 대한 대가로 주는
많은 돈을 보면
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하게 됩니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어 주면서
부활의 기쁨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부활의 기쁨이 너무 커서
사실을 이야기할 것인지
선택하게 됩니다.
그 선택을 위해
그 체험을 곱씹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발견한 하느님의 흔적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 받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그 사랑을 다시 느끼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