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5-6)
약한 믿음
약한 믿음은 가장 나쁜 병이며 가장 나쁜 악입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시거나 약속하시는 일은 그냥 믿읍시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 어떤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하느님께 돌려서는 안 됩니다. …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은 연구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히는 것입니다. 믿는 이는 칭찬받지만 의심하는 이는 죄가 없지 않습니다. 구원자께서도 이에 관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지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5 만물이 존재의 평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 자체의 힘”과 “만물에게 힘을 주는” 평등에 대한 탁월한 증언이다. 이 증언으로 엑카르트는 만물의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만물이 평등한 까닭은 그들이 하느님, 곧 존재의 신성한 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엑카르트의 이 이야기를 한 젊은 목사와 함께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답례로 해 준 이야기는 이렇다: 그 부부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을 아주 싼값에 장만했다고 한다. 그 집에 입주한 첫날 밤에 그들은 두려움과 기분 나쁜 느낌 때문에 방에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밖으로 나가 자신들의 어린 아기를 안고 와서 자신들 사이에 뉘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은 그날 밤은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아기가 그들과 그들의 새집에 복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토록 생명 자체는 고귀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강력하다.(152)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4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장-6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요한 크리소스토모
세례는 새로운 창조
여러분은 이 사건이 참으로 하나의 새로운 창조인 것을 봅니까?
하느님의 은총은 이 사람들을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은총은 이들의 본질을 다르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의지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은총은 또한 영적인 눈으로 하여금 참된 실제를 바라보아 앞으로는 더 이상 심판대에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마치 눈에서 가시를 뽑아낸 것처럼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어 올바른 것을 정확하게 바라봅니다. 은총은 추잡한 모습을 한 악을 버리고 아름답고 영광된 선을 바라보게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창조를 해 나가시는 것을 이해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살아온 일생동안 돌과 나무를 신으로 알고 기도하고 섬겨 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변하여 돌을 돌로, 나무를 나무로 보게 되었고, 이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창조주로 섬기면서 그분께만 기도하도록 변화시킨 분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참된 행위를 해 나가기로 작심하는 것이 어찌하여 새로운 창조인지 이제 이해하겠습니까?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이제 막 세례를 받은 여러분 모두가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2코린 5,17).
이전 것을 모두 잊어버립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시민과 같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시다. 우리 안에 사시는 분의 품위에 맞도록 말하고 행동합시다.(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