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요한 6,17-18)
폭풍이 불어올 때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위험하다
배를 타고 떠날 때의 상황이 구원자를 찾는 제자들의 마음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습니다. 파도치는 물결 위에 연기처럼 떠 있는 너무나도 캄캄한 밤은 그들을 불안하게 했고 도무지 배를 어디로 저어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물결을 일으켜 머리 높이까지 파도가 치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네, 상황이 이런데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고 요한은 기록합니다.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그리스도마저 계시지 않으니 그들의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는 사람들은 사나운 폭풍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서 고립되어 있거나 적어도그분이 계시지 않는 곳에 있는 듯 보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법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그들은 구원하실 수 있는 분에게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영적 어둠 속에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이 괴롭다면, 쾌락이라는 쓴 물에 잠겨 숨 막히게 답답하다면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그러면 죄로 인한 죽음과 위험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5 만물이 존재의 평등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피조물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원과 그들의 근원이 같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을 낳을 때, 아버지께서는 나도 낳았다. 나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흘러 나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안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뿌리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공통 조상과 접촉을 유지하는 것이고 만물의 형제애와 접촉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피조물과 똑같이 느끼고 인식한다.” 존재의 원 안에서, 중심점은 원둘레의 다른 모든 점과 같은 거리에 있다. 이 중심점이야말로 우리가 뛰어들어야 할 존재의 원초적 근원이다. 엑카르트는 인간 우월주의와 생물 우월주의를 배격한다. 그는 피조물 전체가 신적인 평등을 똑같이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조물과 하느님은 평등하다. 실로 이 평등은 하느님이 자신을 비웠기에 기능해진 것이다." 엑카르트의 의식은 우주 자체에까지 손을 뻗는다. ”나는 천상의 존재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똑같은 목적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싶다 ... 우주를 존재하게 하고, 우주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천상의 존재들이 부단히 움직이면서 추구하는 목적이다.“ 엑카르트는 별과 혹성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15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4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장-6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슬람교의 유일신 신앙과 '믿음의 다섯 기둥'
이슬람의 ‘믿음의 다섯 기둥'
이 첫 번째 신앙 고백은 이슬람 신앙이라는 건축물을 떠받치는 다섯 기둥 중 한 기둥이라기보다는, 사실은 여타의 모든 기둥이 그 위에 서 있는 주춧돌 또는 지반이 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신앙 고백을 기초로하여 이슬람교의 다른 신앙 행위가 모두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첫째 기둥이 든든히지 않으면 다른 모든 기둥은 무너지고 만다. 이 첫째 기본 신조 고백을 형식적으로 교리로서만 입으로 중얼거리는가 아니면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는가에 따라서 진정한 무슬림과 사이비 무슬림,, 진정한 신앙인과 형식적 종교인, 구원받을 자와 심판받을 자가 판가름난다
이슬람 신앙의 다섯 기둥 중에 “<꾸란>이 알라의 말씀임을 믿는다”라는 경전의 신성성이나 절대 권위를 강조하는 별도의 신앙 기둥 항목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이다. 가령 그리스도교나 불교에서는 경전의 절대적 중요성을 여러 가지 형태로 강조한다. 그에 비하면 이슬람교가 별도로 ‘경전의 신성성' 고백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 신앙 기둥인 기본 신조 고백을 진심과 순수한 믿음으로 믿으면서 심령에 각인하는 사람은, 자연히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의 절대성과 신성성을 믿게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 첫 번째 신앙 기둥은 이슬람교에 귀의하는 모든 신도들이 삶을 ‘알라 중심적인 삶'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기둥인 ‘기도'(Salat)는 첫 번째 신앙 기둥인 기본신조 고백을 구체적인 몸과 마음의 통일된 전인 행위로 고백하는 신앙 행위다. 어느 종교인들 기도 생활을 중시히지 않을 리 없고, 신도에게 기도하기를 권장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이슬람교가 ‘기도'를 신앙의 다섯 기둥 속에 넣어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그 기도의 방식과 법도를 간결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제정함으로써 12억 이슬람교도를 하나로 묶는 효과를 낳고 있다.(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