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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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5일 목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마르 16,17)
이 은사는 오늘날 교회에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러한 표징과 능력들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것들에 관하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는 그 당시 사도들을 통하여 육적으로 행하였던 바를 지금도 날마다 영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구마 은총으로 신자들에게 안수하고 악령이 신자들의 정신 안에 살지 못하게 할 때, 그것이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어떤 신자든지 속된 옛 삶을 버리고 거룩한 신비를 말하며 온 힘을 다하여 창조주의 권능을 거듭 찬미할 때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선한 권고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을 제거하는 사람은 ‘뱀을 집어 드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표징들은 영적이기에, 곧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고양시키는 수단이기에 더 위대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원하기만 하면 이러한 표징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영혼 안에는 아무개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입니다. 대가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 없고,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그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것은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것 안에도 있고, 저것 안에도 있습니다. 저것은 이것 안으로 흘러들고, 이것은 저것 안으로 흘러듭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로가 했던 말의 취지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복 안에서 하느님과 연합하십시오." 바로 여기서 영혼은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 원천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끌어냅니다.
영혼의 생명과 존재는 전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다른 쪽은 여기 이렇게 바깥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은 언제나 이 안쪽을 따라서 하느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영혼의 바깥쪽이 안쪽을 밖으로 밀어내거나 죽이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159)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4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11-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언제나 새로운 희생을 발명하며
히야친타는 배고픔과 목마름에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 병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던 그 어린이다운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루치아 더러
“아이고, 저 개구리와 귀뚜라미더러 좀 울지 말라고 해. 난 머리가 아파 죽겠어. 이젠 아무 일도 못하겠구나." 라고 했다.
“그럼 이젠 죄인들을 위해 고통받지 않겠니?"
프란치스코가 말하자 히야친타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아. 고통받고 싶어. 그냥 저대로 울게 내버려 둬."
하고 열띤 어조로 말했다.
때때로 그들은 집에서 식사하는 이외에 9일 동안 혹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그들이 이런 약속을 하고 있는 기간중에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셋이서 고바 다 이리아로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따라 있는 늪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히야친타는 루치아에게 말했다.
“난 목이 너무 말라서 골치가 아파. 이 물을 마시고 싶다."
“이 물은 마시지 못해 얘. 우리 엄마가 이 물은 더러우니 마셔서는 안된다고 했어 . 바로 이 근처에 있는 마리아 도스 안요스 아주머니 댁에 가서 얻어 마시자."
이 아주머니는 최근에 시집온 친척이었다.
“아니야, 난 말이지 목마른 고통대신으로 이 물을 마시고 싶어. 좋은 물로는 고행이 되지 않잖아!"
이렇게 끊임없이 새 희생을 바치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에 주리고 있었던 것이다.(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