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것으로 봐 둘 사이는 영적 부자 관계였던 것 같은데
둘 사이에는 인간적으로도 나이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마르코가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마르코는 어렸거나 젊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2장은 베드로가 헤로데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신자들의 기도 덕분에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얘기이고 여기서
베드로는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갔던 것입니다.
마르코의 어머니 집은 신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아들처럼 돌봤던 중국 신학생이 신부가 되어 사목하던
곳을 제가 방문하러 갔는데 마침 그때 그 신부가 베드로처럼 공안에 잡혀갔고,
그래서 저와 신자들은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마르코 어머니 집에 모여서
기도했던 사도행전의 신자들처럼 모여서 기도하였는데 그날 밤에 그 신부가
감격적으로 그리고 기적적으로 풀려나 얼싸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르코도 어렸을 때 이렇게 베드로를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때문에 같이 고초를 겪고,
하느님 덕분에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기쁨을 같이 나눕니다.
우리말에 동고동락이라는 말이 있고 누가 누구와 동고동락했다면
이는 둘 사이가 매우 깊은 관계임을 뜻하는데 베드로와 마르코는
세속적 동고동락이 아니라 영적인 동고동락을 나눈 사이이고
그래서 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때의 마르코는 영적으로 그리 성숙한 상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와 만났지만 베드로 사도는 홀연히 떠나고
어제도 읽은 사도행전 12장 24절을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러니까 마르코는 사울과 바르나바의 1차 선교의 동반자가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를 모두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13장을 보면 무슨 이유인지 마르코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5장을 보면 마르코의 동반을 놓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다투고
그래서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부터는 둘이 갈라서는 빌미가 됩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오로는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다.”
이런 것을 보면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대 성인으로 여기는 이들도 인간적으로 싸우고 갈라지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또한 도전도 됩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미성숙하고 그래서 싸우고 갈라질지라도
영적 성장의 여정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나의 여정이 멈추어서는 안 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이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마르코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주님의 복음을 기록하고 전하는 사도가 되고 복음사가가 되는데
우리도 이런 마르코에게서 위안과 도전도 받으면서 영적 성장을 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