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 월요일-2021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다 미래형의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를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당신이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
성령께서는 한편으로는 진리의 영으로서 당신의 진실을 증언하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이 돌아가신 뒤 박해를 받게 될 제자들을
보호해주실 터인데 그것은 제자들이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제자들도 당신을 증언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박해가 제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인데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일단이라는 말이 많은 경우 일단一旦의 뜻으로 쓰이지만
이 경우엔 일단一段이라는 뜻으로 제가 쓴 것이며
다음에 이단二段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당신의 말씀과 달리 제자들이 당신을 모른다고 하고 도망쳤으니
일단은 주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결과이고 그래서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단은 인간의 단계段階입니다.
그리고 이단은 성령의 단계段階입니다.
일단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도망치고 봤는데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자
새로운 단계 곧 이 단계인 성령의 단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 단계에서 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소위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 제자들에게 요구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하느님도 손쓸 수 없게
자기가 완전히 끝장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열한 제자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그리고 비록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에 숨어있었을지라도 다행히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지요.
여기에 우리가 오늘 배울 것이 있습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될 때도 내가 끝장내지 않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리는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하느님께 여지를 드릴 여유가 나에게 없습니까?
나로 가득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여지랄까 말미를 드리면
그 여지에 하느님께서 성령과 작당하여 모의하실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마침내 주님의 예언대로 주님을 증언하게 될 것이며.
오늘 리디아의 마음을 연 바오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주님을 믿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뭐든 우리가 끝장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새로운 강론을 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 주간 강론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또 죄송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다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