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떠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님의 승천에 앞서 듣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에 앞서 하신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떠나가심은
전례 시기적으로는 승천으로 들리지만
복음의 순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수난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난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당신의 수난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빛을 주려고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약속하시지만
그래도 떠나감이라는 단어는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들이 근심에 가득 찼다고 표현됩니다.
떠나감이라는 단어는
버려짐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자신들을 버리고 가시는 것으로 느껴지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의 육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물기 위한
하느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수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육의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함께하시기 보다는
이제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본다면
성령 강림도 예수님의 육화처럼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승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순간 순간은
모두 세상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순간이며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우리 삶의 순간 순간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