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5월 8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영원한 세상에서 알게 될 지식
“영께서 너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는 주님 말씀을 생각할 때, 저는 현세의 삶을 사는 이의 마음은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렴풋이’ 볼 뿐이라고 바오로 사도도 말했다시피, 영혼을 무겁게 하는 썩어 없어질 이 육체(지혜 9,15 참조) 안에 사는 동안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약속받은(2코린 1,20) 성령께서, 바오로 사도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l코린 13,12)라고 한 그 완전한 지식을 우리가 실제로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이생에서 완전하게 아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완전함에 도달할 미래에 얻게 될 지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영께서 너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될 지식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은 새로운 성전이다.
하지만 엑카르트는 우리가 하려고만 한다면 영혼을 증명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요소는 영혼의 지적인 능력이다. “지성은 하느님의 성전이다”라고 엑카르트는 잘라 말한다. “하느님은 다른 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자신의 성전인 지성 안에서만 거주한다." 엑카르트는, 인간 영혼의 터전 속에 이러한 지성의 빛이 약간 들어 있으며, 하느님이 성전, 곧 인간 안에 보금자리를 트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느님의 터가 나의 터고, 나의 터가 하느님의 터다.” 엑카르트는 이 “영혼의 불꽃”을 일컬어 자주 “아무개” 라고 부른다.
“영혼 안에는 아무개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입니다. 대가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 없고,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그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것은 제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것 안에도 있고, 저것 안에도 있습니다. 저것은 이것 안으로 흘러들고, 이것은 저것 안으로 흘러듭니다.”(166)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0-2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4절: 서구의 새 정신
재속 성직자의 개혁:
그레고리오 개혁은 옛 요구들을 새롭게 다시 받이들였다. 후에 그레고리오 7세가 된 힐데브란트의 사회로 개최된 1059년의 로마 교회회의에서는, 모든 주교좌 성당과 공주 성직자단의 성직자들에게 사유재산의 포기와 일정한 규칙의 준수를 요구하였다. 이 요구에 준비가 되어 있던 참사회원들은 “수도 참사회원” 또는 “수도 규정의 수도회원”으로 불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재속 참사회원”으로 불렸다. 개혁가들의 노력은 모든 공주 성직자들이 아우구스티노 회칙을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운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즉, 그러한 형태의 수도 참사회 4,500여 개가 중세 시기에도 있었다. 그 중심은 라테란 대성전의 참사회원, 대(大) 성 베르나르도 성당의 아우구스티노 참사회원, 파리의 성 빅토리오회와 예루살렘 성묘의 참사회원, 십자가회원들이었고, 그밖에도 많았다. 이 수도 참사회원들은 성직자를 그 시대의 사도적 이상으로 접근시킨다는 목표를 추구하였다. 그레고리오 개혁은 재속 성직자의 성화를 기호(旗號)로 삼았다. 성사적 사제직과 교회 안에서의 지위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강조는 재속 사제들의 내적 쇄신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사도적 청빈과 독신제, 성직자 장상에 대한 순명과 위계적인 교회의식, 신학교육과 나무랄 데 없는 사생활은 새 사목사제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였다.
자신이 클뤼니의 수도자였던 우르바노 2세 교황은 성직자의 개혁을 수도회의 개혁보다 중요하고 긴급한 것으로 보았다.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콘라트 1세는 1140년경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모든 성직지들에게 “참사 수도회적”으로 생활할 것을 요구하였다. 열렬한 개혁가이던 라이헤르스베르크의 게르호(+1169)도 아우구스티노의 참사 수도회 규칙을 모든 재속 사제들에게 의무화하려 하였다. 얼마 동안 이 운동은 전 성직계를 장악할 것처럼 보였다.(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