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5월 9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
배반과 십자가 처형, 장례를 암시히는 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 (1코린 11,23) 이므로, ‘조금 있으면’, 그러니까 그날 밤의 나머지 시간과 다음 날만 지나면 그들이 그분을 보지 못하게 될 시간이 올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날 밤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셨고, 다음 날 늦은 시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다음 무덤에 모셔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있으면’ 그들은 그분을 다시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사십 일 동안 부활에 관한 많은 증거를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그들이 당신을 보지 못하게 되고,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당신을 보게 되는 이유가 ‘내가 아벼지께 가기 때문’ 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이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는 무덤에 갇혀 너
희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주권이 무너진 뒤 다시 조금 있으면,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타날 것이다. 이는 내가 사멸성을 취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제 이루어졌으므로 내 부활의 승리를 안고 아버지께 가기 위해서다.’
-존자 베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은 새로운 성전이다.
이 영혼의 불꽃은 하느님 안에 있다. 이 영혼의 불꽃 속에서 신적인 영혼과 신적인 지성이 서로 겹쳐진다. 영혼의 불꽃은 사람의 영과 하느님의 영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여기서 원둘레의 점과 원의 중심점이 합일한다.
바로 여기서 영혼은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 원천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끌어낸다. 영혼의 생명과 존재는 전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는 우리 존재의 안쪽이 들어 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는 곳이고, 하느님이 가장 생생히 그려지는 곳이다.
”영의 고차적 부분인 이 불꽃 속에는 하느님의 형상, 곧 지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영혼 안에는 “신적 본성, 신적 빛, 광선, 신적 본성의 흔적과 같은 불꽃이 들어 있다”고 엑카르트는 잘라 말한다.(166)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0-2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읽는 법을 배워라”
1917년 가을 세 아이의 환경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두 번째 발현 때 귀부인께서 “읽는 법을 배우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루치아가 이미 이야기했는데 이 지방에 있어서 읽는 법을 배우라는 것은 학교에 다니라는 것을 뜻했다.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자 상대방은 루치아의 말을 가로막고,
“아직도 학교에 안 가니? 그렇다면 성모 마리아께 순명한다고 할 수 없잖니?" 했다.
가엾은 루치아는 그럴 적마다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설령 그것이 잘못이라 해도 부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원래가 그녀 자신이 양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고 신선한 푸른 산기운이 퍼져 있는 언덕에 최상의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술궂은 학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까 봐 아주 두려워했다.
결국 이 사정에는 섭리의 손길이 뻗쳤다.
올린뼈아는 자기네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 주기 위해 항상 누군가를 심부름 보내야 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8월 말경 드디어 양치는 것을 아들 요한에게 맡기고 두 아이를 집에 남아 있게 하였다. 히야친타는 집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이 변경을 싫어했다.
마리아 로사는 루치아를 위해 이것과는 다른 해결책을 세웠다. 즉 날마다 루치아가 양떼를 데리고 갈 장소를 정해 주였다. 이렇게 하면 루치아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왔을 때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루치아의 어머니도 딸들도 그녀를 찾으러 가야 했고 더구나 다른 한 사람이 대신 일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결국 9월 중순에 루치아의 양떼 지키는 일은 중단되었다.(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