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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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2일 주님 승천 대축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부활시기 마지막 주간이자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날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기 까지 당신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 몸소 보여주시며 하늘에 오르는 결과를 보지 말고 오르기 까지 당신과 같은 과정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참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승천은 하늘을 보면서도 자신이 서 있는 땅을 잊지 않게 하고 밝은 해를 바라보면서도 자신 뒤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도 같이 바라보게 합니다. 위를 바라보기 전에 아래를 바라보고 밝음을 바라보기 전에 어둠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신의 현실을 숙고함 없이 자아인식의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또 자신의 내면의 어둠과 대면하지 않은 채 오로지 명상과 신비에만 관심을 두고 위로만 오르려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겸허한 자기 성찰과 진실한 자기인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하느님 앞에서 더 낫게 보이려고 높은 것, 위에 있는 것을 보기 이전에 나의 현실 속에 내려와 나의 약함과 무능함을 바라볼 때 비로소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하늘 길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넘어진 그곳,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그곳,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체험할 바로 그곳이 하늘에 오르는 발판이 되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진솔한 자기 만남이 곧 참된 하느님 만남의 조건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일상에서 다가오는 괴로움, 근심, 걱정, 불안은 가시밭길이며 고통의 길이지만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반드시 지나가야할 길이며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지 못하듯 우리의 영혼도 고통과
시련으로 단련 받지 않으면 더욱 굳건한 신앙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야자나무를 보고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는 그 나무의 성장을 막기 위해 꼭대기에 커다란 돌을 얹어 놓았습니다. 수년 후에 야자나무는 오히려 주위에 있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더 높이 치솟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돌이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키듯이 일상안에서 만나는 유혹과 시련 그리고 고통이 하느님 안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고 더욱더 하느님을 향해 영혼을 높이 들어 올리게 합니다.
겸손한 영혼은 하느님께서 친히 들어 높여 올리십니다. 교만은 자기를 자기 이상형과 동일시하여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교만을 품고 있을 때 사람은 허상의 세계로 높이
솟아 올라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겸손은 하느님의 영안에 사는 삶인지를 알아보게하는 기준이며 신앙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 입니다. 겸손없이는 하느님을 자신을 위한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습니다. 겸손은 하
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뵙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직감력을
발전시키게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겸손해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가를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영혼이 하느님께로 들어 높여 올리질수록 더욱 겸손의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주님께 겸허히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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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사도 24-28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Amsterdam)의 기적
네덜란드 - 1345년
성당이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을 때, 몇몇의 용감한 남자들이 성광에 보관되어 있는 기적을 일으킨 성체를 구하기 위하여 감실의 문을 부수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도구는 성냥개비처럼 부쉬졌고 다가오는 불길 때문에 그 용감한 남자들은 피해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나무로 지어진 성당과 감실은 격렬한 불길에 의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시련을 겪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다. 그들은 불길이 잡힌 후에 갯더미 속에서 수백 년간 보관되면서 공경을 받아온 그 성체를 찾아냈던 것이다. 또한 성광과 섬지어 성체를 싸고 있었던 성체포도 흠 하나없이 완전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1578년 칼빈주의가 네덜란드로 밀려들어와 국내의 모든 가톨릭 교회의 성명(聲明) 발표가 금지되었을 때까지 이 성지로의 행렬과 순례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성스러운 성체를 경배하는 것까지 네델란드 국민들의 마음에서 빼앗아갈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종교박해가 끝났을 때 그 성스러운 성체를 공경하기 위한 축제가 새로이 거행되었다. 하지만 1645년에는 이 기적을 기념하는 300주년 기념 축제가 매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심지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강토가 히틀러에 의해 짓밟혔을 때에도 그 성체 기적의 기념일 밤에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며 “그 성지”로 속죄의 행렬을 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오늘날에는 다시 암스테르담의 가톨릭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기도와 감사를 드리며 성스러운 기적의 성체께로 순례를 한다.
성체는 우리의 영혼이 모든 유혹과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며, 영생으로 이끌어 주는 영혼의 놀라운 양식이다. 성체는 많은 성인성녀의 몸에서 기적을 일으켜서 성인성녀들은 다른 음식을 먹지 않고도 넘치는 육신의 힘을 유지한 채 오랫동안 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스위스의 농부 성인 니콜라우스 폰 플류에와 고인이 된 발트해(海)의 엘리자베드 폰 로이테, 그리고 근래에는 노이만 폰 콘너스로이드와 카푸친 수도회의 신부 피오 폰 피에트랄치나와 같은 사람들처럼 말이다.(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