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하나가 되는 법.
오늘 제자들을 떠나시며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주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법에 대해 자연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라는 생각으로 즉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이란 어떤 것입니까?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도 사랑은 누구를 내 안에서 밀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사랑은 누군가를 내 안에 품는 것이고,
주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시듯 그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 바라지 않으셔도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만 우리가 하나 되기를 바라시지 않고 우리도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 되기를 포기하고 사는 것이 또한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한때는 우리가 하나 되기를 그리도 열망하고 애도 썼지만
언제부턴가 하나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왜 포기했을까요?
그것이 싫어서?
아닙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정말 하나 되기를 바랐고 애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하나가 아닌 우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자신과 이웃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다가
더 이상 이 문제로 미워하고 괴로워하기 싫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가 되는 데 최대의 적은 ‘완전한 하나’에 대한 열망입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완전, Perfect’에 대한 열망이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완전에 대한 열망이 욕망 또는 욕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지만, 특히 하나 됨에 있어서 많이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하나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완전한 하나에서 부족한 하나가 더 아쉽고 불만입니다.
100%의 하나에서 1% 부족한 것이 너무 아쉽고 불만이고,
숫제 10% 부족한 것보다 더 아쉽고 불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욕망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것이어야 하고,
주님께서 완전히 하나 되기를 바라신 것도 이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하나 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무엇보다 바라시는 것이고,
이것이 신앙적인 방법이고 가능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서로 안에 머물기보다 하느님 안에 같이 머무는,
독탕에 들어가기보다 같이 욕탕에 들어가듯이
하느님 사랑 안으로 같이 들어가는 우리가 되는,
그런 꿈을 꾸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