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1,21-22)
관상과 행동
히늘로부터 교회에게 계시된 바, 교회가 가르치고 권하는 삶의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 안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는 삶입니다. 하나는 낯선 땅에서 시간 안에 남아 있는 삶이고, 또 하나는 영원한 하늘 거처에
서 사는 삶입니다 ... 첫 번째 삶을 나타내는 이는 베드로 사도이고 뒤의 삶을 나타내는 이는 요한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속세의 악을 견디는 일에서 당신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나를 따라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요한에 관해서는 영원한 행복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당신이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 명확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행실은 내 수난의 본을 보고 완전하게 배웠으니 나를 따라라. 그러나 지금 막 시작된 관상은내가 왔을 때 완전하게 되도록 내가 올 때까지 계속하거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내하는 충만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따르지만, 지식의 충만함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채워지며 그때서야 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악은 죽어 가는 이들의 땅에서 견디는 것인 반면, 주님의 좋은 것들은 산 이들의 땅에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은 새로운 성전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는 과거 속으로 사그라지지 않고, 향상 시작 중이고, 진행 중이며, 새롭습니다.“
우리의 원천과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영원히 젊고 영원히 현재인 이 시작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새로움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것.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다시 ‘새로워질’ 것이다. … 하느님은 영원히 일한다. 그분은 힘들이지 않고 창조하고 있다." 하느님이 하는 일은 모두 새롭다.
“지혜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다’(1,14). 현존이야말로 만물의 시작이요 처음이며 원천입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하느님의 모든 일이 새롭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지혜서는 말합니다. ‘지혜는 …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7,27). 묵시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21.5). 이사야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시작이요, 내가 마감이다’(44,6).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하고 계십니다.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과, 그것의 목적은 언제나 시작입니다. 그것은 늘 일어나고, 늘 태어나고, 늘 태어났습니다.(171)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사도 24-28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슬람교의 유일신 신앙과 '믿음의 다섯 기둥'
이슬람의 ‘믿음의 다섯 기둥'
순례 여행길에서 메카가 가까워지면 이슬람교도들은 목욕 재계하고 순결을 상징하는 흰 천을 걸친 뒤 메카의 카바 성소와 아라파트 언덕에서 그리고 인근 사막지역에서 질서정연하게 종교 의례에 참석한다. 대개 종교 의례가 자신의 원형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이슬람교도 유일신 신앙의 처음 신봉자요 믿음의 아버지라고 믿는 아브리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을 둘러싸고 일어난 <구약성경>의 고사를 종교 의례 형식으로서 재연한다.
의례 재연의 궁극 목적은 유일신 알라만 섬기고 그 뜻에 순명하겠다는 신앙 다짐, 영적 자기 정화와 영지의 밝아짐, 죄의식의 소멸과 내세 천국 신앙 등을 다짐하는 데 있다. 이 기간 동안 ‘믿음의 다섯 기둥'을 보다 철처하게 실천하면서,, 현실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신분 차별과 빈부 격차와 인위적 가식을 벗어버리고 성실한 자세로 ‘신 앞에 선 참자아'로 되돌아 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실펴보았지만 이슬람교에서 강조하는 '믿음의 다섯 기둥'은 결국 이슬람의 유일신 신앙의 표현 형태이자 지속의 방편이며 구체적 실천 강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대한 강점은 딘순성과 통일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