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 왜 그런지 어제 독서 야고보서와 자꾸 연결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자
이것을 막으려고 했던 요한의 속 좁은 생각을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어제 야고보 사도의 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청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주시지 않을 것을 청하기 때문이고,
청해도 주시지 않음은 당신 뜻을 거스르는 나쁜 것을 청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주고자 하시는 좋은 것을 우리가 청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의 뜻이 다를 때 일어나는 것인데
이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잘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은 당신 뜻을 절대로 꺾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청하는 것은 많은 경우 욕심 채우기입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이 원하는 것은 하느님 뜻과 상관없습니다.
요한이 원하는 것은 특권을 자기들만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건 같이 기뻐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이 원한 것은 결국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이 날리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다른 이의 선행도 시기합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님께서 자기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보고
그 형제를 시기하면, 모든 선을 말씀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
자신을 시기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만 칭찬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만 선행을 하고 다른 이의 선행을 시기합니다.
그래서 선행과 선행의 권한도 독점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기 선행 구역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내 구역에서는 나만 선행해야지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내가 또 다른 요한이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을 특별히 받았기에 그 사랑을 독점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런 요한과 같은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