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늘 야고보서는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권고하는데
저는 사람에게 원망하지 않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 때문에 아버지가 한번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버리고 가셨다면 아버지를 원망하겠지만
하느님께서 아버지를 데려가신 것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원망이건 무엇이건 시선을 하느님께 돌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원죄입니다.
시시하게 아담과 하와가 원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만든 분이시고,
인간은 그렇게 된 존재입니다.
‘잘되면 자기 공,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로
조상 탓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 인생 책임지라고 하지만
저는 사실 많은 것이 조상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유전 인자를 준 것도,
그렇게 키운 것도 다 부모이고 조상의 대물림입니다.
그래서 책임 있는 부모는 자식이 잘못한 것을 다 자기 책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 부모가 이럴 진데 하느님 아버지는 더 근본책임이고 무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사람을 별로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을 더 원망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에게 꽂혀 있는 시선을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쓰고,
가능한 한 빨리 원망을 기도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부부의 인연을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이 서로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서로 좋아 택한 것 같아도 실은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부부간에 문제가 생겨도 서로 원망하지 말고 자기 잘못을 반성할 뿐 아니라
왜 내가 저런 인간하고 결혼했지? 내가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어!라고 생각지 말고
왜 저런 인간을 제게 주셨습니까? 하고 하느님을 원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화살을 하느님께 돌린 다음,
그러나 우리가 신심 깊은 신앙인이라면 원망만 하지 말고,
주님께서는 왜 이런 인간을 내게 주셨지? 이렇게 생각해야 하고,
더 나아가 이 인간에게 나를 보내신 것은 아닐까? 하고 주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튼, 원망을 기도로 돌리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 뜻을 찾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