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셈 정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이나 정파를 배제하는 정치라고 사전은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덧셈 정치도 있겠고 그것은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일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 말씀의 한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여기서 포도밭 밖이란 공동체 밖이란 뜻이고,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은 공동체서 축출했다는 뜻이며
머릿돌이어야 할 주님을 사람들이 버려버렸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저와 가까운 공동체들 안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척 슬프고,
그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이 무척 아프고 그 사람들이 무척 가엽습니다.
왜 덧셈은 할 줄 모르고 뺄셈만 하는가?
그런데 자기가 그런 줄은 알고 있을까?
자기가 그런 줄 안다면 무척 슬플 테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럽니까?
그것은 그것이 그의 능력이고 한계이기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그에게 있어야 할 덕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덕이란 선덕의 줄임말로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대로 악덕이란 선은 행할 수 없고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덕이 있어야 선을 행할 수 있는데 덕은 없고 악덕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덕이 있고 어떻게 덕을 지닐 수 있을까요?
보통은 덕을 쌓는 사람에게 덕이 있고 오늘 베드로 서간도 이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실 믿는다면서 덕이 없는 사람이 있어 욕을 먹습니다.
능력은 많은데 덕이 없는 지도자들이 욕을 먹는데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의 덕에 다른 덕들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 가지 덕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덕이 그 위에 쌓이게 되고,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나의 덕을 가지고 있고 다른 덕들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덕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덕을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도 갖지 못하고 모든 덕을 거스르게 됩니다.”(덕들에게 바치는 인사 6-7)
우리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뺄셈 인생이 있는가 하면 덧셈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덕에 다른 덕을 하나하나 그리고 차례차례 쌓고,
그 덕들 덕분에 모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덧셈 인생이 있는가 하면
선덕을 쌓지 않아 악덕에 악덕을 하나하나 그리고 차례차례 쌓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다 적으로 만들어 배제하는 뺄셈 인생이 있을 겁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이고 나는 어떤 인생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