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비겁함의 영이라!
비겁함의 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떠한 영입니까?
비겁(卑怯)함이란 한자어를 그대로 뜻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비란 비천하다고 할 때의 그 ‘천하다’, ‘저속하다’는 뜻이고
겁이란 ‘겁나다/두려워하다’, ‘약하다’, ‘피하다’는 뜻으로서
비천하고 약하기에 두려워하고 두려운 것을 피하는 겁니다.
저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에게 아쉬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영(spirit)적인 차원을 중시하지 않거나 간과한다고 제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Scott Peck이라는 분은 좀 다르고
이분의 주장이 저의 생각과 많이 일치합니다.
그것은 약함-두려움-회피의 구조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두렵고 두렵기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체력적으로 약하고,
심리적으로 약하고,
정신적으로 약하고
영성적으로 약하기에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감기조차 두려워하듯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약한 자신을 직면하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악한 자신을 직면하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죄의 자신을 직면하는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피하는데
그 피하는 방법 곧 회피의 방법이 다양합니다.
자기 부정, 핑계와 변명, 위선과 감추기이고,
자기 합리화와 남의 악 들추기입니다.
그 첫 번째가 자기 부정입니다.
정신(spirit)의 힘이 약한 사람은 죄와 악의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일단은 그것이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함으로써 자기 부정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경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할 때 그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런 자신에 대한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짓이 바로 이것인데
그런데 이것은 남의 악 들추기에 비하면 양반인 회피 방법입니다.
약한 사람이 악한 방법을 쓰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약할 뿐 아니라 악해지기까지 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죄와 악을 들추거나 크게 만들고는
그 뒤에 자신의 죄와 악을 숨기고 감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악에 화살을 돌림으로써
자신의 죄악으로 향하던 화살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하느님께 받아 지닌 사람,
곧 성령의 사람은 주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 악령과 직면하셨듯이
죄와 악의 자신을 직면할 힘을 지니게 되는데 그 힘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악을 직면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자신을 겸손하게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죄악과 정면 승부를 겁니다.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나 너무 어려운 주제를 다루다 끝내지 못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우리는 오늘 내가 어떤 영을 지녔는지 곧 비겁함의 영을 지녔는지
아니면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지녔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