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6월 6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세 가지가 조화된 온전한 사랑
인간 생명은 세 가지가 조화되어 이루어집니다. 에페소인들이 ‘몸(육체)과 목숨(영혼)과 정신(영)’의 은총을 주님께서 오실 때 온전히 간직하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사도가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은 영양분을 주는 부분을 말하고 ‘목숨’은 생명에 관련된 것을, ‘정신’은 지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복음 저자에게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떤 계명보다도 앞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참조· 마태 22,37; 마르 12,30; 루카 10,27). 이 한 구절이 온전한 인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곧, 육체적 본성인 심장, 드높은 지적 이성적 본성인 정신, 그리고 이 둘을 중재하는 영혼을 모두 일컫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7 사람은 위대하다
주님의 성령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지혜 1,7)
신적인 씨앗은 우리 안에 들어 있다. 여느 씨앗이 그러하듯이, 신적인 씨앗도 자라야 한다.
또 다른 자리에서 엑카르트는 “그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되풀이 하여 말한다. 아무도 그 씨앗을 덮어 버리거나 입을 다물게 하거나, 오랫동안 잊어버릴 수 없다. 옮겨 붙을 재료만 있으면 그것은 불타오를 것이다. 씨앗은 자라고 또 자라야 한다. 우리도 자라야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씨앗도 자리야 한다.
이 자람은 끝이 없다. 끝이 있다면, 하느님이 그 끝일 것이다. 신적인 차원으로 뻗어 나가려고 하는 영혼의 포부야말로 영적인 성장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충분히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여러분은 하느님을 더 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충분히 소유한 나머지 싫증이 날 정도라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닐 것입니다.”(181)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6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르 5-9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1년 후에는
루치아는 이 귀찮게 구는 사람들, 비평하는 사람들, 특히 아첨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지금 그녀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그 칭찬과 추켜올리는 말들을 들었을 때 저는 참으로 민망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대해 말하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알쥬스트렐의 세 목동이 날마다 드리는 로사리오의 기도 덕분에 로사리오의 신심은 재빨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은 곧 포르투갈의 새 시대의 서광이었다. 그러기에 포르투갈의 주교를 비롯하여 온 국민은 1938년 파티마의 성모님께 대한 대규모의 감사 축제를 계획한 것이다.
한편 파티마의 심부름꾼이었던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따에게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고통뿐이었다. 그래도 기특한 그들은 두 손을 뻗어 소탈하게 그 고통을 맞이했다. 그 고통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무한히 사랑하올 분의 축복으로 이끄는 십자가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하늘의 기쁨에 자신을 잊고, 이 괴로운 시련을 미리 알려 주고 동시에 천국을 약속해 주신 귀부인의 더할 나위 없으신 아름다움과 그 사랑겨운 말씀을 늘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셋이서 루치아네 집 우물 그늘이나 카베소의 고요한 동굴에 모였다.
거기서 그들은 이 세상 것, 이 세상 사람 일체를 피해 오직 셋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통을 받으며 서로의 힘을 북돋우는 것이었다. 이 평화스런 경지에서 그들은 형언키 어려운 발현의 그때를 재현하며 귀부인께서 가르쳐 주신 희생의 방법, 약속, 그 중에서도 그들에게 맡기신, 이 지상에서는 자기네 이외에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 신비한 비밀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