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8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실재

 

우리는 언제나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어 주변에 있는 실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은 오직 땅만 보고 걸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합니다. 낙원에 살면서 낙원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우선적 관심사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은 외부에서 주어진 짐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짐이 더 많습니다. 여기서 고생이 시작됩니다. 예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 28-30)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사람이 경험하는 진리입니다.

 

애환의 강물에 밀려 흘러온 세월, 그 한복판에서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지금 여기서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향기를 맡고, 맛보고 만져봅니다. 생명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생명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우주 안에 한 부분을 이루는 존재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렇게 영의 눈이 열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실재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골로 1,15-20)

 

바오로 사도가 알게 된 그리스도는 내가 믿어온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단번에 알아차리게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깨달은 그리스도는 문제 해결사도 아니고, 종파에 묶인 그리스도도 아니고, 인과응보의 틀 안에 갇혀계신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구원이었습니다.

 

다음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책에 나온 대화입니다.

넌 누구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는데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바뀐 것 같거든요.

유감스럽지만 내가 누구인지 설명을 못 할 것 같아요.

 

난 문을 노크했다.

노크해봤자 소용없어 두 가지 대문이야!

하나는 난 너랑 같은 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할 거야.

 

앎이 삶을 바꿉니다. 우리가 아는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앎의 시작은 주님의 영께서 내 안에 활동할 자리를 마련했을 때 가능합니다.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성프란치스코는 그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가난과 작음과 겸손이라는 열쇠였습니다. 가난은 주님의 영께서 내 안에 머물러 계시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작음은 우월감에 사로잡힌 나를 다른 피조물의 하나와 다르지 않다는 동등함으로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며 생태계의 연결 고리의 하나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자기 성찰을 돕고, 겸손은 너를 받아들일 여백을 만듭니다. 하느님과 너를 받아들이는 공간에는 내가 차지할 공간이 없습니다. 가난과 작음과 겸손은 이렇게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 결국 내가 하느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라는 사실과 하느님이 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같은 신비와 같은 굴복으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앎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신비에 연결된 삶입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영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했던 바오로처럼 (갈라 2,20) 나도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하느님과 문을 여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사람과 문을 여는 하느님, 누가 먼저 두드리고 누가 먼저 여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먼저 행동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는 것은 하느님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하느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안함에 길들어 나만 찾고 자신의 탐욕을 더 부풀리는 데 하느님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기도와 희생과 업적과 공로라는 재물로 하느님의 마음을 얻어보겠다는 속셈으로 하느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와 조화를 이루도록 자신을 내어줍니다. 구원은 우리가 죽은 뒤에 생전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루어지는 치유와 조화로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보다 훨씬 더 살만한 곳으로, 훨씬 더 상호 간에 필요성을 채우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을 공유하는 선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습니다. 황홀한 우주 안에서 누리는 그 기쁨과 자유가 현재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01 형제적 동등성이 있는 곳에 공존과 평화가 있습니다. 형제적 동등성이 있는 곳에 공존과 평화가 있습니다.   새로운 아침마다 무상의 선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로 날마다 새로운 모습... 이마르첼리노M 2024.06.12 426
1500 여덟째 날: 경탄함과 경외함 여덟째 날: 경탄함과 경외함 당신의 삶에서 경탄함의 문으로 들어갈 때, 당신이 일상사의 빛을 경험하게 하는 단순한 방식들은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김상욱요셉 2024.06.12 80
»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실재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실재   우리는 언제나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어 주변에 있는 실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거운... 이마르첼리노M 2024.06.09 288
1498 우상에 빠진 인간 (틀을 만드는 사람은 틀로 망한다) 우상에 빠진 인간 (틀을 만드는 사람은 틀로 망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틀 속에 계시지 않는다. 틀에 묶여있는 사람과 틀을 벗어난 사람의 차이는 자유의... 이마르첼리노M 2024.06.03 248
1497 마리아의 노래, ( 마니피캇) -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인 사랑의 만남 마리아의 노래, ( 마니피캇)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인 사랑의 만남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는 사랑이 이 땅에 사람이 되시어 우리 눈에 볼 수 있는 존재... 이마르첼리노M 2024.05.31 123
1496 갈망이 멈추는 곳에서 부르는 노래 갈망이 멈추는 곳에서 부르는 노래   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어떤 희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회상하는 삶은 회상을 통하여... 이마르첼리노M 2024.05.29 106
1495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들면 그 이상 바라 것이 없는 듯, 모든 복잡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완전히 잊... 이마르첼리노M 2024.05.26 128
1494 무상의 선물을 받아 들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무상의 선물을 받아 들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진실로 포장된 가면을 벗으면 웃을 수 있습니다. 기억 속의 신비로운 화환처럼, ... 이마르첼리노M 2024.05.25 164
1493 신앙의 신비는 두려움의 신비와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신비와의 충돌 신앙의 신비는 두려움의 신비와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신비와의 충돌   프란치스칸 가난은 자기를 열어드리고 내어드려 하느님께서 말씀을 잉태할 모태가 되게 해... 이마르첼리노M 2024.05.24 157
1492 일곱째 날: 세 겹의 부르심 일곱째 날: 세 겹의 부르심 당신이 세 겹의 부르심을 들을 때, 무엇이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가?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라. 다른 이를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김상욱요셉 2024.05.22 107
1491 은총 앞에서 약해져야 우리 자신이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은총 앞에서 약해져야 우리 자신이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 생활은 따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비의 길)   세례성사로 시작되는 그... 이마르첼리노M 2024.05.21 161
1490 기도는 관계적 변화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 기도는 관계적 변화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   복잡한 세상에서 하느님을 찾는 프란치스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길을... 이마르첼리노M 2024.05.17 132
1489 질문과 대답 사이 (“오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무엇입니까? ) 질문과 대답 사이 (“오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무엇입니까? )   성프란치스코에 대한 글에서 그는 어느 날, 밤을 새워가며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이마르첼리노M 2024.05.11 264
1488 아테네 사람들에게 선포한 바오로 사도의 복음과 우리 신앙의 성찰 창조의 사랑을 알아야 도구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한 바오로 사도의 설교 내용을 보면 지금 우리가 자주 잊어... 이마르첼리노M 2024.05.09 262
1487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을 배운 사람은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을 배운 사람은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변화가 가능합니다. 신비체험은 나를 몸소 선택하시는 하느님에 ... 이마르첼리노M 2024.05.04 215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04 Next ›
/ 10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