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6월 11일 화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우리의 도움이신 주님이 계신데 우리에게 왜 지팡이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거의 빈손에 헐벗은 상태로 파견하셔서 교사들의 처지가 무척 어려워 보였으므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엄격한 명령을 다소 누그러뜨리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필요한 음식과 옷만 받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오로 사도의 말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티모 6,8). 사도는 또 이런 말도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갈라 6,6). 이 말씀은 영적 결실을 추구하는 제자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자원을 스승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초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스승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승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교사들이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구리 돈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말에서 금은 감정을, 은은 말씀을, 구리 돈은 목소리를 뜻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한테서 받아서는 안 되며, 오직 주님께서 주신 것만 지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단자와 철학자들의 가르침이나 엉터리 교의를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세상 걱정으로 짓눌려서도, 두 얼굴을 지녀서도,치명적인 사슬에 두 발이 묶이게 두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거룩한 땅 위를 걸어 나아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뱀으로 변하는 지팡이를 지녀서도(탈출 4,3 참조.), 육적인 것에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지팡이나 막대기는 갈대와 같습니다. 조금만 기대도 금세 부서져서 우리 손을 찌를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7 사람은 위대하다
주님의 성령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지혜 1,7)
엑카르트는 근원을 일컬어 소용돌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엑카르트가 말한 이미지, 곧 하느님 안으로 가라앉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우리
네 근원의 핵인 신성의 핵은 물론이고 안쪽의 안쪽, 씨앗의 핵까지도 소용돌이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고, 우리의 신적인 근원 속으로 가라앉는 행위는 한계를 모른다. 우리가 끝없이 떨어지고 자랄 수 있을 만큼 하느님은 깊다. ”천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의 세월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하느님과 우리는 한계를 모른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는 그 정도로 위대하다.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 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할 것이고, 엑카르트가 말한 대로, “천국의 평화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만족하여 멈추어도 안 되고, 가만히 서 있어도 안 된다. 삶의 방식이 어떠하든 간에 이 세상에 정체해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먼 거리를 여행한 사람도 절대로 멈추어 서지 않는다."(18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6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금주간 성서읽기>마르 10-13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주 예수님, 당신은 교회를 파견하여 세상의 빛,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 모든 사람이 바라보도록 빛을 내는 등붙이 되게 하셨나이다. 예수님, 교회를 통해 퍼져 나오는 빛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평온한 마음으로 찬미하고 기도하며 당신을 기다리는 충실한 신부처럼 늘 성실하게 깨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교황 · 주교 · 사제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공동체와 수도회가 신랑이신 당신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당신을 기다리게 하소서. 이 세상 곳곳에 있는 교회가 끊임없이 당신의 오심을 노래하며 성령의 힘을 받아 이렇게 외치나이다.
0 오소서, 주 예수님. 당신 교회 안에,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어서 오소서! (침묵 가운데 반복한다.)(255)
-성시간, 슬라브코 바르바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