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과 인권이 중시되면서 말의 사용도 바뀝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 많이 쓰던 ‘불구자’니 ‘운전사’니
‘간호원’ 같은 말을 요즘은 쓰지 않지요.
같은 맥락에서 ‘가용인원’ 같은 말도 논란입니다.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런 면에서 의식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썼다가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허투루마투루 쓰이는 것을 싫어하고,
여기저기 자기를 내어주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기 좋아하는 일 한 가지만 하려고 합니다.
어제도 모 형제회 평의원들과 평의회를 하는데
공석이 된 평의원을 대신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의 마음이 있었는데 식당 봉사자들이
또 몇 분 못 오시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제도 손님이 많아 바빴는데 봉사자가 없어서
연세 드신 봉사자 한 분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지요.
그런데 이런 것은 지금 교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제일 큰 이유는 웬만큼 젊은 분들은 다 직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봉사하시는데 너무 힘들어 못하시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제일 큰 이유지만 그러나 앞에서 얘기한 대로
자기를 내어주려는 자세가 부족한 것도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내어주는 분들은 이미 바쁜데도 여기저기 뽑혀 더 바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축일로 지내는 바르나바 사도는 그 반대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준 분입니다.
초기 공동체 모습을 전해주는 사도행전을 보면 이렇습니다.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그리고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부터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었고,
타루스스로 가서는 바오로 사도를 데리고 와 같이 열심히 선교하여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바르나바를 사도행전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먼저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본래 순종 잘하는 사람,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서 후뚜루마뚜루 쓰이는 가용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착하기만 해서는 교회 안에서 이렇게 가용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착하기만 해도 교회 밖에서는 마당발로 불리며 왕성히 활동할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필수적이고 성령 충만은 마당발 봉사의 완성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님께서 맡기시는 소임이라고 믿는 사람,
더 나아가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만이 그 소임이 맡겨졌을 때
거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치지 않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교회 봉사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걱정하는 오늘 저이고,
바르나바와 같이 자기를 내어주는 마당발 봉사자가 많아지기를 바라고 비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