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한 자도 없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는 사람은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거룩한 말씀이 어떻게 빈말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당신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벌을 주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당신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어떻께 실제로 행하지 않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당연히 율법의 가장 작은 것까지도 완수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7 사람은 위대하다
주님의 성령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지혜 1,7)
이처럼 영혼이 성장하면, 우리의 재능도 발달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더 큰 길을 가겠다고 작은 길을 버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가급적 최상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전부 완성해야만 한다." 우리의 신적인 능력에 이르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의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을 최고의 천사에게 줄 뿐만 아니라 내게도 준다. 만일 내가 천사들이 받는 것만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는 천사가 풍성한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것만큼 받게 될 것이다" 받기 위하여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서 받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항상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향상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의 일천 배라도 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준비 부족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본성을 거스른다면, 그것은 그분을 해치는 짓이 되고 말 것이다.” 성장이야말로 영적 체험의 본질적인 요소다. “‘있음’은 ’됨‘ 속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됨은 한계를 모른다.(18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6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금주간 성서읽기>마르 10-13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5절: 십자군 운동
제 4차 십자군(1202-1204):
이 계획의 무성과와 무의미함은 서구에서 남자들만으로 무장한 십자군을 계속하는 데 회의를 일으키게 하였다. 하느님은 피에 굶주린 군인들보다는 방위력이 없는 소년 • 소녀들을 이용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설명될 수 없는 1212년의 소년 십자군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때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천 명의 소년 • 소녀들이 프랑스의 목동인 스테파노와 퀼른의 열 살짜리 니콜라오 두 소년의 인솔하에 성지로 급히 출발하였다. 예상대로 이 광신적인 계획은 무서운 비극으로 끝났다.
원정은 벌써 이탈리아에서 흩어졌다. 많은 아이들이 더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소녀들은 사기꾼들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더럽혀졌다. 마르세유와 브린디시에서 배를 기다리기 위해 모였던 나머지 아이들은 비양심적인 선주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노예로 팔렸다. “이 소름이 끼치는 모습”은 십자군 사상의 “악의적인 풍자화”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나 “그 시대의 정신 태도에서는 다른 사회적 계층과 연령층으로 십자군의 감격이 추이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고 하였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폭력적인 진압과 정복 대신 평화적인 선교를 한다는 십자군 사상의 건전한 핵심을 그후에 취하였다. 그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다미에타로 술탄을 직접 찾아갔다. 그의 설교는 효과가 없었고, 적대하고 있던 군대들은 그후에도 피비린내 나게 서로를 물어뜯었다 -1219년에 다미에티를 점령 하였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도시에서 무서운 살인행위를 저질렀다. 그후 그들 모두 포로가 되었으나 술탄으로부터 관대한 취급과 보호를 받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에서 프란치스코회의 평화적인 선교는 이때 시작되었다.
제 5차 십자군(1228∼1229):
그것은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개인적인 계획이었다. 또한 그는 그때 파문중에 있었다. 그는 이집트 술탄과의 교섭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그리스도인에게 반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224년에는 성도(聖都)를 결정적으로 잃었다.(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