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약속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삶을 계획한다는 관점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것들에 대해서
미리 약속하게 됩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살다보면
일과표를 정하게 되는데
그것 또한 약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약속을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맹세를 하는데 사람들이
하늘을 두고, 땅을 두고, 예루살렘을 두고
또는 자신의 머리를 두고 맹세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땅, 예루살렘, 자신의 머리
이것들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변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맹세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맹세를 하는 인간은
변하는 존재임을 놓치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지키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의지와 상관 없이 바뀌는 부분이 있습니다.
갑자기 아파서
맹세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갑자기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그 약속이 뒤로 미뤄지기도 합니다.
미래를 계획한다는 점에서는
약속이 필요하지만
사정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 두라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지금 당장 지킬 수 있는 것에는
'예'라고 대답하고
그렇지 못한 것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관계가 작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오'라고 말하면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키겠다고
아니 지켜 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당장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예'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노력의 한계가 있어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관계 떄문에 '예'를 대답했던 사람은
내가 가진 한계 떄문에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고
관계도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의도로 맹세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잘 해보겠다는 생각이 더 클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한계
우리가 처한 상황들 때문에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맹세를 하면서
그 부담감에 눌려 살아가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말씀으로
오늘의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