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많은 사람이 왜 그래야 하는지 물을 것입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왜 사랑하고,
천벌을 받아 죽었으면 좋은 사람을 위해 왜 기도하냐고.
지금까지 이런 물음에 그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로 대답해 왔습니다.
사실 원수가 있는 것보다 원수가 없는 것이 낫지요.
원수가 있다는 것은 나의 불행이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그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불행입니다.
그리고 원수를 미워하는 나보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더 완전하고 성숙합니다.
그러니 나의 행복과 나의 완성을 위해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지만
오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왜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보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이라는 각도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왕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왕족의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하든 그답게 하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더 그러겠습니까?
원수는 미워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리도 하고 세리나 하는 것이라고 오늘 주님 말씀하시는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무척 경멸하는 존재였잖습니까?
이렇게 세리와 비교하면서 너희도 세리처럼 되겠냐고
오늘 주님께서는 도전하시며 너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일깨우시고,
아직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녀가 되라고 도전하십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지금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느님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시듯
선인과 악인 가리지 않는 완전한 사랑을 하라고 오늘 주님 도전하시는데
그 도전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로 마음이라도 먹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