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 표현을 성경 안에서 찾아볼 수 없기에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사랑은 해야한다고 말하면서
미움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계명은 보통 명령법 문장인데
미움을 해야할 의무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원수를 미워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은데
미워해야한다는 표현은
마치 우리가 심판자가 되어
상대방에게 미움이라는 벌을 줘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상대방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상대방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내가 그 사람 위에서 그를 심판하는 식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도 나와 같은 한 사람이며
나의 눈에는 그렇지 않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나에게 향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향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을
막을 권한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하느님처럼 조건 없이 그 사랑을 사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과정 속에 있지
이미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과정이라는 것은
미워할 수 있음을 포함합니다.
그를 미워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기에
내 안에 올라오는 미움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미움의 감정이 인정될 때
오히려 미움의 감정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너 때문에'라는 표현은
우리가 여전히 상대방을 심판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화살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고
그냥 단순히 내 감정을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한 과정으로 미움이 줄어들 때
우리도 하느님처럼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