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어제 말씀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제 단식과 자선과 기도에 대해 가르침을 주시면서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만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빈말을 되풀이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에 있어서 빈말이란 어떤 것이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빈말을 할 수 있을까요?
보통 빈말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으면서 한번 만나자고 하는.
빈말이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면
하느님께 어떻게 빈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느님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진심인 사람은 이럴 수 없고,
당연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말,
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말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관계부터 재정립해야 합니다.
아무 말이나 씨불여도 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고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하는 분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정립해야 할 관계를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 관계는 당신과 하느님과의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데
영광스럽게도 우리도 그런 관계를 맺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다니!
구약에서는 하느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게 했는데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다니!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도
저는 어머니로 부를 수 있게 해주셨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욕심도 내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이것이 욕심이긴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욕심은 괜찮을 것이고,
주님도 우리가 감히 이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느님이 더 따듯하고 푸근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왜냐면 기도 특히 관상 기도는 말보다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말도 중요하고 말도 많이 나누겠지만
만나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아무 말 없어도 좋고 그것이 많은 경우 더 좋습니다.
사랑의 관계는 말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래서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서로의 사랑에 잠기기 위해서 만나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거듭 강조하지만 만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기도가 명상이나 독백이 되지 않고,
그다음에 대화를 하든 청원을 하든 뭐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바꾸고,
오늘 강론은 이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