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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4일 관구 위령...
사슬에 묶인 삼손 (Samson ...
- 두려움의 이동
오늘 연중 제12주일의 얘기와 가르침은 우리 인생과 공동체가
한번은 겪게 될 어려움과 그 대처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의 배는 주님을 태우고 호수를 건넙니다.
그런데 돌풍과 풍랑으로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는데
없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이 우리 인생에 없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한두 번은 무척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경험했다면 침착할 수 있어야겠지요?
어떻게?
첫째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의식적이고 의지적으로 담대해지고 침착해지는 겁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정신 차리고,
자신에게는 담대해지자, 침착해지자고 주문을 걸면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까짓 것' 하며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큰일 났네’라고 합니다.
차분히 생각하면 큰일이 아닌데 큰일이 났다고 한순간 그에겐 큰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어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이 경험들에서 지혜를 얻어야 하고 그래서 지혜로워진 사람은
작은 일도 큰일로 만들어놓고 쩔쩔매는 어리석은 사람과 달리
담대하게 큰일도 작은 일로 만들고는 넉넉하고 여유롭게 해결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적인 방식이라면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이 또한 정신을 차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풍랑이 일면
가능한 빨리 시선을 한배를 타신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풍랑에서 시선을 떼어 주님께 두는 건데
그 반대일 경우 곧 주님에게서 시선을 떼고 풍랑에 시선을 둘 경우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1분도 안 지나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끼리 호수를 건너는 마태오 복음 얘기는 오늘 마르코 복음과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주님은 한배를 타지 않으시고 나중에 제자들 곁으로 오시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듯 주님을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떨다가
주님인 줄 알고 나서는 베드로가 용기를 내어 물 위를 걸어 주님께 갑니다.
그런데 어쩌다 눈길이 풍랑으로 가자 다시 두려움이 생기고 물에 빠집니다.
주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바로 두려움에 빠지고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서에 다른 예가 있는데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예입니다.
골리앗은 거인이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수가 두려워하던 힘센 장수입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은 그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러 나갑니다.
잘 아시다시피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나가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다른 장수와 마찬가지로 거인이지만
같이 나가주시는 하느님께 골리앗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싸우는 데 칼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것은 원수가 아니라 주님이고
주님께서 나와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권고 ‘악습을 몰아내는 덕’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자기 집을 지킴에 주님의 두려움이 있는 곳에 원수가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주님의 두려움 또는 주님께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어떤 원수가 침입해도 다 이겨낼 수 있기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수가 두려울 때 우리가 주님께 달려간다면
그 두려움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두려움이라고.
오늘 제자들은 그래서 풍랑을 두려워하다가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는데
복음은 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렇게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저는 이것을 일컬어 ‘두려움의 이동’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풍랑에 대한 두려움에서 주님께 대한 두려움으로의 이동,
작은 두려움에서 큰 두려움으로의 이동.
별것 아닌 두려움에서 참 두려움으로의 이동이라고.
우리의 두려움도 이렇게 이동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