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헛수고 2.
어제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강론에서 저는 헛수고에 대한 나눔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저의 헛수고가 또 생각났습니다.
사실 제 인생에서 최대의 헛수고는 북한 사업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의 힘든 줄다리를 하여 가까스로 평양에 종합 복지관 ‘평화 봉사소’를 세우고
그것을 통해 북한에 상주하며 인도적인 사업과 복음화 사업을 하려 했는데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가 피살된 후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가는 것을 막아
아직도 가지 못하고 그 많은 돈이 투입된 복지관은 운영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운 ‘평화 봉사소’가 개점휴업 상태인 것이
헛수고의 느낌을 제일 많이 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헛수고의 느낌을 더 크게 느끼게 하고 좌절감까지 느끼게 하는 것은
남북 관계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남북의 망나니들 때문에
특히 윤석열 정부 때문에 그동안 이뤄놓은 많은 것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정말로 속이 쓰리디쓰립니다.
기도의 헛수고.
기도한 것이 헛수고라는 느낌,
이것이 ‘평화 봉사소’ 헛수고보다 더 큰 헛수고 느낌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한우리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이 기도를 바치면서도 계속 바쳐야 하나? 언제까지 바쳐야 하나?
공염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혹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공염불(空念佛)이라는 느낌,
이것 정말 고약한 느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느낌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가 사실 ‘아직은’ 공염불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도하고 싶지 않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이때 저를 붙잡아주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네가 아직 간절하지 않구나!
-포기할 때 진짜 실패하는 것이다!
-악마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낫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남이 아픈 경우라면 몰라도 내가 아픈데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기도의 실패는 없고 실패하는 기도가 있을 뿐입니다.
간절하지 않은 기도.
성급한 기도.
같이하지 않는 기도.
사랑이 부족한 기도.
이런 것들이 실패케 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는 것으로 오늘 나눔을 끝내며
그러니 또 그리고 더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