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6월 27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마태 7,25)
박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이집트와 아시리아 땅에서처럼 강물이 넘쳐흘러도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세상의 지혜를 받드는 사람들만 해를 입습니다. 부는 바람은 거짓 예언자들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한곳으로 모여 집에 ‘들이칩니다’. 집이 바위 위에 서 있으면, 이것들은 아무 해도 입히지 못합니다. “바위 위를 기어 다니는 뱀의 길"(잠언 30,19)은 본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물은 유혹과 박해의 형태로 질서 있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까지 들이칩니다. 집은 그리스도를 바닥과 기틀로 모시고 있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세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방식입니다. 곧, 반석 위에 세우시어 굳건함과 힘을 지니게 하십니다. 그래서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집에 들이친 모든 박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리게네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8
영성은 깨어남이다
젊은이, 내가 이르노니, 일어나거라(루카 7,14).
자, 잘 들어 보십시오! 그 고귀한 능력 속에서 하늘 아버지는 외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젊은이, 내가 이르노니, 일어나거라.” 하느님과 영혼의 합일은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심원합니다. 하느님은 지각이나 갈망이 도달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십니다. 갈망은 우리가 지각을 통해 도달하는 모든 것 너머에까지 뻗습니다. 그것은 천상의 존재들보다 멀리 뻗습니다. 실로, 그것은 모든 천사보다 멀리 뻗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지 천사의 작은 불꽃에 의해 살아질 따름입니다. 갈망은 멀리 뻗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멀리 뻗지만, 지각이 아무리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갈망이 아무리 모든 것을 동경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하느님인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지성과 갈망이 끝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십니다.(19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6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로마 1-7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항상 깨어 있으라
잠시 후 두 소녀는 겨우 대모님 집을 떠나 곧장 우물 그늘로 달려가 보였더니 과연 프란치스코는 그곳에 있었다.
“넌 왜 꿀물을 마시지 않았니? 대모님께서 몇 번이고 널 불렀는데 나타나지도않고."
“지금 이유를 말할께, 잔을 손에 들자 갑자기 생각이 난 거야. 좋아, 이걸 희생으로 바치고 예수님을 위로해 드려야지 하고. 그래서 여기로 피해 온 거야."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로써 그가 얼마나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두 소녀도 서로 그러했지만 기도하기 위해서 두 소녀들 이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에 마음을 썼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세 목동은 마르뜨의 소유지인 왜전나무 숲으로 양을 몰고 갔다. 이곳은 포르투갈어로 왈제아(평원)라고 하는 곳인데 숲 양편 밭에는 양들이 좋아하는 목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루치아는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양을 지킬 테니 두 사람에게 맞은편 저쪽으로 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히야친타는 루치아를 떠나는 것이 싫었다.
“프란치스코 오빠가 저편으로 가는 것이 좋지 뭐 . 난 루치아와 함께 있고 싶어"
과연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었고 동생보다 철도 들어 있었다.
“나도 함께 있고 싶지만 죄인들을 위해 바치지."
이렇게 말하고 그는 그들을 떠나 왜전나무 숲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갔다.
얼마가 지난 다음 루치아는 프란치스코가 가엾게 생각되었다. 아마 혼자서 쓸쓸해 하리라고 여겨 히야친타에게 오빠한테 가보라고 했다.(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