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베드로에게 임무를 맡기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알려 주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임무를 맡게 된 것도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 맡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그 소임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도
하느님께서 주실 것이기에
그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각자 임무가 주어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 부분에 능력이 있어서
맡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곧 경험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각자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능력은 필요하지만
그 효과는 각자의 능력을 더한 것을
넘어간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더욱이 인간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소임에서 오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일에 겸손하게 머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으로 시작하지만
그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 일에서 맺어지는 열매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일을 하는 데 정신이 없지만
이제는 여유도 좀 생겼고
열매도 조금씩 맺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 쉬운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또는 '하느님과 함께'가 아니라
'내'가 이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아무런 보상 없이
어느 한 소임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소임이 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내 것으로 삼지 않는 것
즉 나를 드러내는 방식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소임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소임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소임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임을 하다보니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더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확신은
우리가 꾸준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오늘 나의 일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