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그리스도의 얼굴인 우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만물의 형상이시며” (골로 1,15)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골로 2, 9-10)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 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골로 3,10)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이 온 우주의 모습이라고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형상은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숨어 계신 하느님의 마음을 그렇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볼 수 있는 우주를 통해 창조주의 마음이 보이니까요. 실재는 철저하게 서로 연관되어 존재하고 생명의 에너지들이 관계성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 주변의 피조물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주 전체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거기서 나의 실존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 안에서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들이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을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내어주는 법을 배우고 공존의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인간은 우주의 지배자요 정복자로 자처할 것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구축된 삶의 실재 안에서 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하는 우상의 실재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너와 피조물과의 간격을 메우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창조의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 믿음의 기초를 든든하게 해 줍니다.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반응은 육화를 드러내는 도구적 존재로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드러난 굴복하는 겸손일 것입니다. 피조물의 세계에서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한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끝없는 우월감에 중독되어 모든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처럼 관계를 파국에 직면하게 만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은 관계 안에서 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관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기쁨과 자유를 동시에 얻습니다. 오로지 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무상의 선물을 자신 안에 쌓아두기만 할 뿐 내어주지 않습니다.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통치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의 틀로 철저하게 무장한 과도한 생각들이 현실과 연결되기보다 고립을 자초하기 때문에 외로움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관계의 진실에 직면하면서 배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자연의 현실보다 설계되고 꾸며진 현실을 좋아합니다. 꾸며진 현실은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증명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려는 데 집착한 나머지 비교하고 경쟁하기에 바쁩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이러한 태도는 믿음의 현장에서 더욱 드러납니다. 우리의 믿음은 태도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조차 인위적인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으로 내면을 감추려고 합니다. 많은 양의 기도문을 외우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희생을 셈하고 거룩한 척합니다. 계명 준수와 도덕적인 성취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업적과 공로를 앞세웁니다. 이러한 자신의 태도는 보이기 위한 숨겨진 의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데에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진실을 빵과 포도주에 담아 음식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빵과 포도주는 물질적인 현실입니다. 창조의 첫 번째 육화가 예수의 몸에서 인격화된 것이라면 우리의 육화도 평범한 음식으로 거행하는 성찬례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상상적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현실이며 물질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진실은 진실이 아닙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볼 수 없다면 성체성사는 의미가 사라질 것입니다.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현장은 일상에서의 우리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이 성체와 성혈을 받아마셔도 나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받아 모신 그리스도의 몸이 육화되는 현장은 나를 내어주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몸으로 너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면서 관계의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체는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이며 어느 한쪽만으로는 나를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듣고 먹어야 물질적인 것이 영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의 겉으로 드러난 현실은 내면의 현실에서 나와야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슬프게도 잔을 닦고 꽃과 고운 천으로 장식하면서도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덩이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가 육화되는 장소가 나의 내면에 있고, 너와 나의 관계에 있고, 온갖 종류의 피조물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신 것이 변화되는 땅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체는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이며 나를 내어주게 합니다. 진리를 모두 하나로 묶어 놓은 성사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인 우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낳는 육화의 신비가 거기에 있습니다. 나는 변화된 얼굴로 창조주의 형상을 드러내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가 어딘가요?   꿈들이 만나 봉오리를 내밀었지 저녁 바닷길을 걸으며 단순한 기쁨 한 송이 꿈에 동참하는 또 한 송이 꿈의 연대가 만드는 우리의 운명 미래... 이마르첼리노M 2023.09.16 231
69 하느님의 놀이터 (우주 안에서 경탄하는 신비) 하느님의 놀이터 (우주 안에서 경탄하는 신비)   하느님의 신성(神性)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간격을 메우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당신의 한 부분인 성령을 우리... 이마르첼리노M 2024.06.24 228
68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들같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들같이   어느 날 한 자락의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의 볼을 비빌 때 나는 내 존재의 깊은 심연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보듯이 바깥에 서서 ... 이마르첼리노M 2023.07.01 227
67 생명의 빵 (무상성과 보편성의 잔치) 생명의 빵 (무상성과 보편성의 잔치)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로 하느님의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는 무상성과 보편성의 잔치가 성체성사를 통해 양식과 음료로 주... 이마르첼리노M 2024.04.20 226
66 수도원 카페 이야기_1,"엄마의 오늘의 단상" 글을 쓰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의 깊이를 더하려는 이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 대신 그분의 글을 공유하려 합니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김상욱요셉 2023.11.24 223
65 하느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들 하느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들   믿는 이들의 최종 목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신비로 상호 존중과 자유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달... 이마르첼리노M 2023.10.24 223
64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내어줌을 배우는 영성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내어줌을 배우는 영성   꽃은 꽃으로써 만족하고 향기를 내어줍니다. 나무는 나무로써 만족하고 잎과 열매와 몸 전체를 아낌없이 내어... 이마르첼리노M 2023.07.17 223
63 질문과 대답 사이 (“오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무엇입니까? ) 질문과 대답 사이 (“오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무엇입니까? )   성프란치스코에 대한 글에서 그는 어느 날, 밤을 새워가며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이마르첼리노M 2024.05.11 222
62 아테네 사람들에게 선포한 바오로 사도의 복음과 우리 신앙의 성찰 창조의 사랑을 알아야 도구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한 바오로 사도의 설교 내용을 보면 지금 우리가 자주 잊어... 이마르첼리노M 2024.05.09 216
61 찬미받으소서 회칙과 요한복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종교적 관점이든 아니든, 카톨릭의 관점이든 불교의 관점이든 우리... 김명겸요한 2023.05.26 216
60 믿음은 사랑으로 드러난 태도의 변화 믿음은 사랑으로 드러난 태도의 변화     믿음의 활력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개인적인 노력에 따라 구원받는다는 영지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은 이원론으로부터 영... 이마르첼리노M 2024.02.21 215
59 말씀을 담을 수 없는 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의 몸과 같습니다. 말씀을 담을 수 없는 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의 몸과 같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육화의 신비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예수는 인... 이마르첼리노M 2023.12.18 215
58 경험된 지식은 기쁨에 찬 가난과 겸손으로 얻게 됩니다. 경험된 지식은 기쁨에 찬 가난과 겸손으로 얻게됩니다.   가난을 내려가는 일과 내려놓는 일로, 겸손을 허용하는 일과 놓아주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내가 객... 이마르첼리노M 2023.11.07 214
57 문이며 목자이시며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의 부재 문이며 목자이시며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의 부재,   아버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우리의 믿음에서 하느님이 아버지로서의 하느님보다 위협적이고 벌을 주시는 하느... 이마르첼리노M 2023.04.30 212
56 17. 충실함은 공부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돌보시도록 맡기기 17. 충실함을 공부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돌보시도록 맡기기 때때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볼 때 화가 난다. 또 다른 때에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 김상욱요셉 2023.11.22 211
Board Pagination ‹ Prev 1 ...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Next ›
/ 1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