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7월 2일 화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7)
자연계 세력들의 주인
배를 몰려는 제자들의 노력은 보란 듯이 실패했습니다. 호수는 그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부으려고 했고, 파도는 금방이라도 그들을 삼킬 기세였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은 그들을 거슬러 공모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겁에 질려 우
주의 통치자요 자연계 세력들의 주인이신, 세상의 키잡이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풍랑을 가라앉혀 위험을 사라지게 하시어 자신들을 절망에서 구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8
영성은 깨어남이다
젊은이, 내가 이르노니, 일어나거라(루카 7,14).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고요 속에 계신 하느님 안에서 이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표상과 형상을 여의고 고요해져야 할 것입니다. 실로, 그러한 사람은 하느님께 성실을 다해야 할 것이고,그 무엇에도 기뻐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젊은이, 내가 이르노니, 일어나거라” 하고 말씀하시고, 몸소 그 일을 이루고 싶어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한 덩이의 돌을 옮기라고 명명하고, 자기도 똑같은 한 덩이의 돌을 옮길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는 나에게 천 개의 돌을 옮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백 파운드를 옮기라고 말하고, 자기도 똑같은 무게를 옮길 마음을 먹고 있다면, 그는 천 파운드를 옮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일을 몸소 수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사람은 무슨 일에서든 그분을 따라야지,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안에서만 둥지를 틀게 하십시오. 그러면 만물이 곁에 있게 될 것입니다.(195)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우리는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창조계에 대한 참된 사랑은 창조계 전체를 똑같이 사랑하는 하느님처럼,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하찮은 벼룩일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안에 있다면, 그것은 천사보다 더 고귀하다. 하느님 안에서 만물은 평등하며, 하느님 자신이기도 하다.”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은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이다. “천사와 정신, 심지어 각다귀조차도 하느님 안에서 평등하다." 우리와 만물이 평등하다는 의식만이 진정한 친절과 평화를 이루어 낸다. “하늘과 땅에서 가장 큰 복은 평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엑카르트는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의 평등을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 예컨대, 엑카르트는 한 마리의 개에게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개 조차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다. 나는 어제 이 수도원에 도착하여 무덤가에 핀 샐비어와 다른 식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곳에는 누군가의 다정한 벗이 있다, 한 뙈기의 땅이 그를 다정하게 맞이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벗을 진실로 사랑한 사람은 벗에게 속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랑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벗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싫어할 것입니다. 한 마리의 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동물이기는 해도, 그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그 개는 주인을 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미워하고, 주인의 벗에게는 빈부를 따지지 않고 호의를 보입니다. 앞을 보지 못한 한 가난뱅이가 자의 주인을 좋아한다면, 그 개는 자신의 주인을 싫어하는 왕이나 황제보다 그 가난뱅이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만일 그 개가 자신의 주인에게 자신의 절반밖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나머지 절반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