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에게 듣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합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고
토마스에게 당신의 몸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말합니다.
무엇이 그가 예수님을
주님과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심은 어떤 것을 믿지 못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에서
믿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심은 좋지 않은 것처럼 표현하십니다.
토마의 경우를 보면
그가 믿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믿기 어렵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즉 적어도 그는 예수님 부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즉 그의 의심은 관심을 포함하는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독 '보다'라는 동사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보다'라는 동사는
전부 같은 동사이며
요한이 무덤에 가서 아마포와 수건이 놓인 것을
보고 믿었다라고 말할 때
그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요한 복음에서
항상 믿음과 연결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 전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을 위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그렇기에 토마스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믿고 싶어하는 마음과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맹목적인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의심은 관심의 표현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신앙에 있어서
의심을 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있는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관심은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과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